도로 표지판에 일부 잘못 표기된 내용이 있더라도 하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잘못된 신호표지로 사고가 나더라도 운전자 과실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 가족이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3월29일 제주도 서귀포시 편도 3차로의 도로 교차로에서 유턴을 하다 맞은편 차량과 추돌사고를 냈다. 해당 교차로는 'ㅏ' 형태로 별도의 유턴 신호 없이 '좌회전시, 보행신호시/소형 승용, 이륜에 한함'이라는 보조표지판만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해당 교차로 좌회전을 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좌회전 신호도 없었다. A씨는 신호등이 녹색에서 적색으로 변경되자 반대편 차로로 유턴을 했고, 직진 중이던 차량에 들이받이는 사고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A씨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A씨의 가족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해당 표지는 영조물 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실제 도로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신호표지로 인해 운전자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고, 이는 영조물 설치 관리상 하자에 해당해 사고와의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판단해 A씨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한 번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표지의 내용으로 인해 운전자에게 착오나 혼동을 가져올 우려가 있는지 여부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운전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 표지의 내용에 일부 흠이 있더라도 일반적·평균적 운전자 입장에서 상식적이고 질서있는 이용방법을 기대할 수 있다면 표지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교차로는 좌회전할 도로가 설치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색 신호일 때 유턴을 할 수 있다고 혼동할 여지도 없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