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13일 한 시간 여 진행한 기자회견에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측 핵심 관계자) 그룹, 그리고 국민의힘의 현 상태까지 모두 지격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중에 흘린 눈물의 의미에 대해 "분노"라고 말할 정도로 발언 수위는 강했다.
이 전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대통령실은 물론 국민의힘은 침묵하고 있다. 의도적 무시다. 섣부른 대응은 자칫 이 전 대표의 전략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여론의 흐름을 더 살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이 전 대표의 작심비판은 100일 앞둔 윤석열 정부에는 또 다른 악재가 될 가능성이 커졌고 비상대책위원회 춭범을 앞둔 국민의힘도 벌집을 쑤신 듯한 분위기가 됐다.
여기에 이 전 대표가 신청했던 비대위 출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심리가 17일로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 회견이 여권에 미치는 파장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처분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여권의 정치환경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선제공격에 나서며 여론전의 고삐를 죈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준석, 6명 실명 공격…"끝까지 싸울 것"
이 전 대표는 전날 회견에서 현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벌어진 여권의 위기 상황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며 윤 대통령과 함께 당 소속 의원 6명을 실명으로 나열해 저격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장제원·이철규 의원을 '윤핵관',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김정재 박수영 의원을 '윤핵관 호소인'으로 각각 지목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 대통령과 관련해서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거친 언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등 '폭로성 주장'을 쏟아냈다. 이 대표가 가처분 심리를 앞둔 상황에서 그야말로 전면전에 들어간 모양새다.
이 전 대표는 추후 당원들을 위한 온라인 소통공간을 개설하고 당의 혁신 방향에 관한 책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가처분 심리가 기각되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그는 회견 직후 저녁 페이스북에 "당원가입하기 좋은 토요일 저녁"라는 글을 올리며 "그들이 유튜브에 돈을 쓸 때, 우린 당원이 되어 미래를 준비합시다"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 지지층이 유튜브를 즐겨 사용하는 강성보수·장년층에 분포해있다는 점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뒤숭숭 대통령실-여당…일단 무대응
대통령실이나 당은 일단 '무대응' 기조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전 대표가 실명으로 지목한 '윤핵관' 중에 유일하게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이철규 의원은 이 대표 회견에 대해 "오로지 남 탓과 거짓말만 했다"면서 "이준석은 아주 사악한 사람"이라며 맞받았다.
반면에 당내 이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자랑스럽고 짠한 국민의힘 우리 대표, 그럼에도 우리는 전진"(김웅), "이준석은 여의도에 '먼저 온 미래'"(김병욱) 등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상당수 의원은 이같은 양극단의 공방 상황에 대해 "당이 공멸로 가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까스로 수습에 들어가는 듯 했던 내홍 사태가 다시 일파만파로 확산하면서 정부여당 지지율에 다시 악재가 될 수 있는 위기감에서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신당창당론'도 지속해서 거론되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연이은 악재 비대위…인선 끝나도 가처분 남아
이준석 폭탄이 터지면서 '주호영 비대위' 체제도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 듯한 양상이다. 주말까지 인선작업을 끝나도 여진은 남아 있다.
비대위가 활동 기간도 정하지 못하고 출범하면서 차기 당대표 선출하는 전당대회 시기를 둘러싸고 주자들 간에 충돌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대표가 비대위 체제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전을 지속한다면 당권 주자들 입장에서 달가울 수 없다.
17일 법원이 이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심리를 진행함에 따라 당 분위기는 또 한차례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인용될 경우 비대위 출범에 급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 여권이 대혼돈으로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기각되면 '주호영 비대위'가 일단 예정대로 첫발을 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대표가 전면전을 선언한 만큼 이 경우에도 '이준석 리스크'를 안고 '불안한 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