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日과 경제·안보 폭넓은 협력"…尹 '한일 대결' 프레임 깼다

[尹대통령 8·15 경축사]

◆'DJ-오부치 2.0' 공식화

"일본, 더 이상 극복할 대상 아냐

中·러 팽창 맞서 연대해야" 강조

日 '공식적 반성' 전제는 과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취임 후 처음 내놓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민들에게 일본에 대한 역사적 인식 전환을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서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지 77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더 이상 반목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세계 평화·번영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일본을 향해 가장 전향적인 메시지를 낸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보수와 진보 정권 등 이념과 관계없이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겨냥해 “간교하고 무자비한 탄압”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2008년 첫 광복절 연설에서 일본에 대해 “역사를 직시해서 불행했던 과거를 되살리는 우를 결코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201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런 문제(과거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고통과 상처를 (중략) 치유할 수 있도록 책임 있고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요구했다. 소위 ‘죽창가’를 거론하고 일본과의 경제 분쟁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 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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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윤 대통령은 첫 광복절 연설에서 대결적 한일 관계로 이어져온 역사적 프레임부터 깨뜨렸다. 윤 대통령은 “양국 정부와 국민이 서로 존중하면서 경제·안보·사회·문화에 걸친 폭넓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격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한일이 반목해서는 공동 번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동북아는 1당 또는 1인 독재 체제와 계획경제에 기반을 둔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이 팽창하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법치를 내세운 한일 양국을 압박하는 형태로 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권위주의 진영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국민에게 호소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포괄적 미래상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해 한일 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조선총독부 폭파와 ‘버르장머리’ 발언으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던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복원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1998년 일본을 방문해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 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면서 양국은 문호를 개방하고 협력 관계로 전환했다. 오부치 총리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특별 담화에서 언급한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공식 외교문서에 명시하며 화답했다.

윤 대통령의 전향적인 대일 메시지에도 풀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과거사 문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경우 오부치 당시 일본 총리가 ‘통렬한 반성과 사과’를 담은 외교문서에 서명하는 양보가 있었다.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역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가 있어야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집권당인 지민당 각료들은 전범을 기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며 윤 대통령의 연설을 무색하게 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공물 값을 봉납했다. 외교부는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살아 있는 위안부 문제도 해결책이 요원하다.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윤 대통령의 연설과 관련해 “광복절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얘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말씀은 한마디도 없느냐”고 비판했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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