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들은 최전성기를 28~34세로 보는데, 저는 (서른살인)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 공연에 함께 하는 43살의 무용수 프리드먼 포겔이 제게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한다’고 한 말을 듣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다 싶었죠. 저도 42~46세 무렵을 전성기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목표 달성을 못해도 훨씬 오랫동안 춤을 추고 싶어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발레리노 김기민은 세계무대에서 ‘동양인 남성 무용수’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이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영국 로열발레단,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POB),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등과 더불어 세계 최고 발레단으로 꼽힌다. 그는 작년 단독공연을 매진시키는 등 발레단의 간판으로 자리잡아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1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나이를 먹으면 예술성은 깊어지는데 피지컬이 안 따라와 문제”라며 “2, 3년 전부터 몸관리를 위해 매일 근력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김기민이 고국을 찾은 건 18~2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갈라 공연 ‘발레 수프림’에 출연하기 위해서다. 2018년 11월 마린스키 발레단의 ‘돈키호테’ 이후 4년만의 한국 공연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갈라보다 전막 발레 공연으로 관객과 소통하기를 선호한다”면서도 “평소 친한 무용수들과 좋은 에너지를 한국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해적’과 ‘돈키호테’의 그랑 파드되(2인무)를 선보인다. 파트너로 함께 하는 영국 로열발레단의 간판급 발레리나인 마리아넬라 누네즈에 대해 김기민은 “여러 차례 함께 해서 잘 맞는 발레리나”라고 소개했다.
전설적 무용수 나탈리아 마카로바로부터 ‘천재적 발레리노’라는 찬사를 들었고, 점프·음악성·감정표현 등에 강점이 있는 김기민이지만 동양인의 신체조건에서 오는 단점은 어쩔 수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대신 똑같은 점프를 해도 도약 타이밍을 조정하거나 중간에 힘을 빼는 등의 노하우를 통해 더 높고 가벼워 보이도록 노력한다. 음악적으로도 피아니스트나 지휘자들의 철학과 템포에 최대한 맞추면서 춤에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양인 대표 무용수’로 인식되는 위상에 대해 “처음엔 정말 무서웠지만 항상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니 실력도 늘고 극복이 된 것 같다”며 “자만했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상반기 20개 넘는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40회 이상의 전막 공연을 치른 김기민은 다음 달 중순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한다. 그는 이 기간 학생들을 위한 무료 마스터클래스 등도 생각 중이라며 “최고의 무용수가 되는 것보다 한국 발레와 다음 세대 무용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