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이원석(사법연수원 27기)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낙점한 데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예견된 인사’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후보자가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자 ‘친윤(親尹)’ 라인으로 꼽히힌다는 이유에서다. 이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대검 핵심 참모인 기획조정부장을 맡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공석인 검찰총장을 대신해 한 장관과 손발을 맞춰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으로 어수선한 검찰 조직을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보자가 일찌감치 유력 주자 가운데 검찰총장 후보 ‘1순위’으로 거론된 이유다. 반면 일각에서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이끈 강점이 그에게 앞으로 운명에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수통·친윤이라는 평가가 그가 향후 검찰총장으로 올라서더라도 ‘양날의 검’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후보자·직무대리 ‘1인 2역’…독(毒)이냐, 약(藥)이냐=가장 주목할 점은 이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와 동시에 검찰총장 직무대리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 19일 송강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단장으로 한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구성했다. 내달 초 예상되는 인사청문회에 대한 본격 채비에 나선 셈이나, 동시에 각종 수사에 대한 지휘 등도 맡아야 한다. 이 후보자가 기존 검찰총장 후보자와 달리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대검에 구성한 이유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검 차장검사는 검찰청법 13조에 따라 수사 지휘는 물론 사무 등까지 검찰 수장의 직무를 대리한다”며 “현재 각종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 중립성 등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현재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서해 피살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탈북 어민 강제 북송 의혹·문재인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또 서울중앙지검 4차장 산하 전담수사팀에서 담당했던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사건은 검찰 정기 인사 후 반부패수사3부가 수사하고 있다. 이들 사건이 모두 전 정권 ‘윗선’이나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 후보자로 나선 이재명 의원 등에 사정 칼날을 드리우고 있어 이 후보자는 내달 초로 예상되는 인사청문회에서 ‘정치 보복이 아니냐’는 야당의 강한 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
◇막판 이른 도이치모터스 수사에 기로 선 ‘정치 중립성’=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가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도 이 후보자에게는 변수로 꼽힌다. 이는 윤 대통령 아내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을 지난해 12월 기소한 지 9개월 가까이 지났으나 여전히 김 여사 등에 대한 검찰 판단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혹여 별건 수사가 이뤄지지 나 무마 등 잡음마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법조계 일각에서 앞으로 수사 방향을 두고 ‘새로운 검·검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의 후보자 지명 직후인 18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검찰의 중립성은 국민 신뢰의 밑바탕이자 뿌리”라고 밝혔다. 특히 “검찰 구성원 모두 중립성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윤(尹)의 발언’과 같이 정치 중립성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후보자가 직무대리로 또는 향후 검찰총장으로서 내릴 결단으로 정치 중립성이라는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소신이 강한 원칙론자로 평가받는 이 후보자는 앞으로 있을 인사청문회에서 ‘식물총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드리우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종식시켜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며 “김 여사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사 기밀 유출 vs 엄정 수사=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법원행정처에 수사기밀을 유출했다는 의혹도 이 후보자가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이는 검사장,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상습도박 혐의로 재판을 받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보석 청탁 등을 로비하기 위해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법조비리 사건’으로 양승태 사법부의 법관들이 연루된 ‘사법농단 사건’과도 맞닿아 있다. 해당 사건으로 기소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신광렬 전 부장판사 등의 판결문에는 이 후보자가 2016년 김현보 당시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과 4개월여간 40회 이상 통화로 영장 청구 예정 사실, 법관 비위 관련 수사 정보들을 제공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김 감사관은 이들 정보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했다. 이들 과정이 수사 기밀 유출이라는 게 최근 제기된 의혹의 요지다. 반면 이 후보자 측은 “법관을 재판 직무에서 배제를 해야 하고, 징계와 감찰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기관 대 기관의 관계에서 징계와 인사 조치, 감찰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한정해 통보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사건은 전·현직 부장판사, 현직 검사, 현직 경찰 간부, 법조 브로커 등 약 10여명을 구속 기소해서 전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수사는 수사대로 엄정하게 처리한 법조비리 사건”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