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뿌리로 불리는 호남이 최근 들어 민주당에 예전과는 다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의 투표율이 사상 처음으로 전국 최저를 기록한 데 이어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호남 세 곳 모두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투표율을 기록하면서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호남의 민심이 민주당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번 전당대회 순회 경선에서 호남 지역의 권리당원 투표율은 전남 37.52%, 광주 34.18%, 전북 34.07%였다.
호남 이전까지 평균 투표율이 37.69%였던 점을 감안하면 호남 세 곳 모두 투표율이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34.07%를 기록한 전북보다 투표율이 낮은 곳은 대전(33.61%)과 충남(31.87%), 제주(28.62%) 등 세 곳뿐이었다.
전당대회가 일찌감치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 구도로 편성되면서 투표 참여율이 낮아진 경향도 있다. 그러나 호남을 대표해 최고위원 경선에 나온 송갑석 후보가 당선 순위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투표율은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무관심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다 보니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호남에서의 민주당 지지도는 오히려 하락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호남 지역 정당 지지도는 8월 1주차 63%에서 8월 3주차 55%로 2주 만에 8%포인트 떨어졌다(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당대회 기간 동안 지지층이 결집하고 컨벤션 효과로 인해 당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정당 지지도가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지지도가 하락하는 모양새를 보인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경고는 대선 이후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지난 지선에서 광주 투표율이 37.7%에 머물렀던 것이 대표적이다. 광주 투표율이 40% 이하로 떨어진 것도, 전국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대선에서 84.82%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민주당에 밀어줬지만 이후 ‘수박’ 논쟁 등 계파 싸움만 몰두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도 “지방선거 때부터 민주당에 대한 실망으로 투표를 하지 않는 민심이 느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명(非明)계 의원들은 호남의 민심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이 이제는 호남이 보내는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민 의원은 B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전통적 텃밭이었고 당원들이 많은 호남 지역에서 투표율이 저조한 것은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매우 큰 경고음”이라며 “이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데 지선 이후에도 이 문제를 계속 지나쳐 오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최고위원에 도전했던 윤영찬 의원도 “많은 지지자들이 대선 이후의 과정을 보면서 민주당의 불투명성과 비민주성, 또 성찰과 반성 없는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을 많이 토로했다”며 “그분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일부 이탈하거나 또는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민주당을 향한 심각한 경고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 후보 사퇴와 동시에 송갑석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이 등 돌린 호남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정체성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선과 지선 과정에서 쌓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차기 지도부가 민주당의 정체성인 ‘민생 정당’의 모습을 되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호남 지역구 의원은 “호남이 차기 지도부에 요구하는 것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서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의 근본을 차지하고 있는 서민과 중산층 정당으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동안 외면했던 민생과 미래를 책임지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당이 그동안 호남에 쌓아온 부채를 갚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