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자의 눈] 관치로 한국판 골드만삭스 나올 수 있나

박우인 증권부 기자





“국민적 관심사면 검사·조사를 할 때 적절한 공적 목적에서 알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금융투자 업계에 대한 검사·제재 관련 정책 방향성을 밝히며 한 말이다. 그간 금감원이 검사·조사를 할 때 비공개 원칙을 고수한 점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원장의 발언을 두고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관치 금융’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회사가 금감원 조사를 받는 사안이 있다면 언제든지 ‘실명 공개’로 망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원장은 취임 이후 ‘이자 장사’ 경고장을 날린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검찰 출신인 이 원장이 금감원장에 임명된 점도 관치의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들었다. 실제 검찰 출신 수장의 취임과 때를 같이해 금융투자 업계에 대한 금감원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한국투자증권 공매도 제재,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차명투자 의혹 등 금융투자 업계 전반에 대한 검사·제재를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금감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문책 경고 등 처분 취소청구소송 2심 판결에 대해 금감원이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업계가 느끼는 부담은 절정에 달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해 대법원 승소 가능성이 낮음에도 금감원이 금융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카드로 상고를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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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금융투자 업계에 이 원장의 입김도 강화되고 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은 이 원장을 만난 후 담보 비율을 내리는 등 금융 당국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증권사 관계자는 “담보 비율 조정은 사실상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만큼 금감원이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한 여론 무마용”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우리은행 횡령 사건, 공매도 논란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시장을 관리감독하는 것이 금융 당국의 역할이지만 최근 행보는 금융 업계에 대한 자칫 과도한 간섭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특히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공매도 논란으로 국내 증시가 폭락하며 현 정부에 대한 동학개미의 분노가 하늘을 치솟고 있는 시점에 금융 당국의 압박이 거세진 점도 당국의 국면 전환용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게 만든다.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태 때도 금감원은 금융투자 업계 CEO에 대한 중징계 등 사정 능력 강화에 열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엄벌주의는 수탁 업무 기피 현상 등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지며 부작용 역시 적지 않았다. 금융 당국이 금융투자 업계의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을 꺾는 요인이 된다면 한국의 골드만삭스가 탄생하는 일은 앞으로도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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