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기에 상승을 이끌었던 아파트 단지가 최근 몇 달간 이어지는 관망세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강남 4구’로 불리던 서울 강동구 고덕단지를 대표하는 아파트 ‘고덕 아르테온’ 국민 평형(전용 84㎡)에서 5억 원이 하락한 매매 거래가 체결됐다. 이뿐이 아니다. 주거 수요가 탄탄한 지역으로 꼽히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동작구 흑석동 등 핵심 입지에서도 지난해 기록한 최고가에서 4억~5억 원이 떨어진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급격하게 오른 부동산 가격에 매수 심리가 쪼그라든 데다 금리 추가 인상에 대한 우려, 강력한 대출 규제 3박자가 맞물리며 ‘급급매’가 아니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빚어낸 단편이다.
2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전용 84.97㎡는 지난달 18일 14억 8000만 원(18층)에 중개 거래됐다. 같은 34평형인 84.93㎡가 19억 8000만 원(11층)에 거래된 시점이 4월이기에 불과 3개월 사이 실거래가가 5억 원 하락했다. 최고가 거래가 나온 동은 단지 인근 명일근린공원에 바로 맞닿아 있어 소위 ‘숲세권’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평면 구조가 수요가 많은 판상형이 아니다. 최저가 거래가 나온 주택형의 경우 판상형 평면 구조를 가지고 있어 두 주택형 간 시세는 비슷하다는 것이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이번 하락 거래는 지인 간 거래 등 ‘특수 거래’가 아닌 정상 거래인 것으로 확인됐다. 단지 사정에 정통한 인근 공인 중개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거래는 일시적 2주택자가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급급매’로 매물을 내놓으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한 건”이라며 “가격을 소폭 낮추는 것으로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5억 원가량 호가를 내렸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이나 동작구 흑석동 등 ‘준강남권’으로 평가 받는 지역에서도 최고가 대비 가격이 4억~5억 원가량 떨어진 거래는 다수 포착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84.8㎡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27억 원(14층)에 거래됐지만 지난달 18일 22억 5000만 원(7층)에 매매 계약이 체결되며 9개월여 만에 가격이 4억 5000만 원 하락했다. 동작구 흑석동에서는 ‘아크로리버하임’ 84㎡ 가격이 올 2월 25억 4000만 원(5층)에서 19억 8000만 원(1층)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모두 공인중개사 주관 아래 이뤄진 중개 거래다.
잠실엘스는 최고가 거래와 최저가 거래가 모두 한강이 보이는 같은 동에서 나왔다. 층수나 인테리어 상태 등의 차이는 있으나 인근 공인 업계에서는 최근 하락 폭이 여전히 크다고 평가했다. 단지 사정에 밝은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최저가로 거래된 물건은 한강 뷰가 가능한 집인데도 급매로 나왔다”며 “일시적 2주택자가 신규 주택을 매입할 때 대부 업체에서 과도하게 대출을 일으켜 대출 상환 부담에 집을 급하게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시장 전문가들은 거시경제 환경을 감안할 때 급급매만 거래가 되는 현 상황이 적어도 내년 5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돌발 변수가 없다면 금리 인상과 윤석열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약속한 한시적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가 내년 상반기까지의 부동산을 주도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급 부족 이슈를 금리 인상이 완전히 덮어버린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대출 규제를 대폭 풀거나 금리에 개입하는 이벤트가 없는 한 당분간은 전세 시장 위주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매매 시장은 그 이후에 되살아 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