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메디컬 인사이드] 보청기도 소용없는 환자들, 인공와우로 '소리' 되찾는다

■ 문일준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신생아 1000명 중 1명 고도 난청

재활치료 골든타임은 생후 6개월

딸랑이 등에 반응 없으면 검사를

심각한 세포손상엔 인공와우 이식

건보 적용 이후 매년 시술 증가세

삼성전자 지원 통해 무료 수술도

문일준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환자에게 인공와우의 작동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문일준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환자에게 인공와우의 작동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아이들은 대화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대뇌 발달이 이뤄지는 시기에 적절한 소리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언어·학습능력 뿐 아니라 사회·정서적으로도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돌이 훌쩍 지나고서야 병원에 온 난청 환자들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크죠. "



문일준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25일 서울경제와 만나 “조기에 난청을 치료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며 “부모들이 좀 더 세밀하게 아이의 청각을 관찰하고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소리를 듣는 데는 신체의 여러 기관이 관여한다. 외이의 귓바퀴가 외부 소리를 모아 고막으로 전달하면 소리 자극이 중이의 고막과 이소골을 진동시킨다. 내이에 위치한 달팽이관(와우)은 진동을 전기신호로 전환하는 기관이다. 이 달팽이관 내부의 유모세포와 청신경을 거쳐 대뇌 청각피질에 도달해서야 마침내 소리를 인지할 수 있다. 여러 단계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난청이 생긴다. 귀의 모양이 제각각이듯 난청의 증상도 사람마다 다양하다. 소리가 작게 들리거나 명료하지 않게 뭉개져 들리는가 하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알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서서히 증상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날 갑자기 발생하거나 날 때부터 청력이 약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가 선천성 난청이다.

여러 통계를 종합해 볼 때 신생아의 선천성 난청은 1000명 당 1~6명 꼴로 발생한다고 보고된다. 그 중 1~2명 정도는 거의 듣지 못하는 양측 선천성 고도 난청이다. 선천성 대사이상질환보다도 유병률이 높다. 약 50%는 유전성이지만 출생 전후 바이러스 감염이나 미숙아, 기계 호흡 등의 출산 합병증 등으로도 난청이 생길 수 있다. 신생아중환자실 입원 경험과 같은 위험요인이 있는 경우 정상 신생아보다 난청 유병률이 10배 가량 높아진다. 미국영유아청각협회(JCIH)는 △생후 1개월 이내 신생아청각선별검사 시행 △선별검사에서 어느 한쪽 귀라도 재검 판정을 받은 경우 생후 3개월 이내 난청 확진을 위한 정밀청력검사 시행 △최종 난청을 진단받은 경우 생후 6개월 이내 보청기 등 청각 재활치료 시행의 '1-3-6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연구에서 생후 6개월 이내에 난청 치료를 시작했을 때 언어발달의 예후가 좋다고 밝혀지면서 치료의 골든타임으로 굳어졌다. 국내에서도 2007년 보건복지부의 신생아 청각 선별검사 시범사업 등을 계기로 활성화됐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남아있다. 난청을 가진 아이들은 대부분 옹알이가 늦어지고 말이 느리다. 하지만 부모가 이를 자각하려면 생후 12개월 정도는 돼야 한다. 선별검사에서 걸러지지 않으면 중요한 청각 재활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문 교수는 "생후 2~3년은 청각피질 영역의 발달이 대부분 이뤄지는 시기"라며 "평소 딸랑이 같이 소리 나는 장난감에 반응하지 않는다거나 청력 발달이 또래에 비해 늦다고 생각되면 난청 여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난청 치료법은 발생 원인은 물론 증상,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외이도와 고막을 포함해 전반적인 귀를 이학적으로 진찰한 다음 자세한 문진과 각종 청력검사를 통해 진단하고 치료 방침을 정한다. 유모세포가 완전히 손상되어 보청기를 써도 효과를 보기 힘든 양측 고도 난청 환자에게는 인공와우이식술을 고려할 수 있다. 인공와우는 달팽이관 내 유모세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장치다. 보청기가 소리자극을 키우는 개념이라면 인공와우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는 전환하는 유모세포의 역할을 대신한다. 1988년 국내 도입된 인공와우이식술은 2005년 국민건강보험 적용 이후 시행건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인공와우이식술 시행은 2017년 636건에서 2021년 824건으로 4년새 29.6% 늘었다. 2001년 10월 처음으로 인공와우이식술을 시행한 삼성서울병원은 2006년 100례, 2020년 1000례를 거쳐 최근 1302번째 환자의 수술을 진행했다. 그 중 428건은 2007년부터 삼성전자가 이어오고 있는 인공와우지원사업을 통해 무료로 실시되어 더욱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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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교수는 한해 100~120건의 인공와우이식술을 소화한다. 문 교수는 “태어난 지 1년 정도 지난 아이들의 경우 1mm보다도 작은 드릴을 써야 하는 세밀한 수술이기에 매번 긴장된다”면서도 “환자들에게 소리를 선물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음을 다잡곤 한다”고 전했다. 2011년부터 삼성서울병원에 합류한 문 교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환자들이 많다. 출생 후 선천성 고도난청으로 진단되어 어려움을 겪던 중 인공와우지원사업을 통해 수술을 받고 청력이 살아났던 아이도 그 중 하나다. 문 교수는 "기초수급자에 싱글맘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아이와 함께 삶을 포기할까도 수없이 생각했는데, 진심을 담아 치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다 잡았다는 편지 한통을 받았다"며 "도움이 필요한 난청 환자들이 많다는 생각에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문 교수는 2020년 발표한 사례 연구를 통해 인공와우 재수술 원인이 대부분 기기고장임을 밝혔다. 그 결과 재수술 비율은 더욱 낮아졌다. 이듬해에는 삼성전자와 공동 연구를 통해 무선이어폰 '갤럭시 버즈 프로'가 난청 환자의 일상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무선이어폰에 소리 증폭 기술을 접목해 간이 보청기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문 교수는 "보다 편하고 저렴한 방식으로 난청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며 "소리를 통해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술기 개발과 청각 재활 연구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메디컬 인사이드’ 코너는 보건의료계에서 주목받는 의료진과 병의원의 활약상을 전달하는 연재물입니다. 임상연구·개발과 진료 등의 영역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의료진과 만나 숨겨진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의료기관 내 다양한 진료과와 부서 차원의 협력을 통해 의료계 변화를 선도하는 센터를 직접 찾아가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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