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종석이 군 제대 후 복귀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빅마우스’가 최근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이종석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고등학생(‘너의 목소리가 들려’), 납북돼 북한에서 자란 천재 외과의(‘닥터 이방인’), 심지어 웹툰의 주인공(‘더블유(W)’) 역도 소화해 내며 ‘이종석만의 장르’를 구축해 한계 없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다.
이종석의 2018년 출연작 ‘사의 찬미’에서 그는 실존 인물인 극작가 김우진 역을 맡았다. 상대 배우는 마찬가지 실존 인물인 소프라노 윤심덕 역의 신혜선이다. 이종석과 신혜선은 고교 시절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사이다. 이종석이 처음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 ‘학교 2013’은 신혜선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같은 반 친구에서 한 드라마의 주인공까지, 두 사람의 서사 역시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사의 찬미’는 심덕과 우진의 비극적인 사랑이 주된 줄거리다. 우진은 목포에서 명망 있는 사업가 집안의 아들이다. 극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지만, 그의 아버지(김명수)는 “원하는 대로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진학해 문학을 배우게 해줬으니 졸업하면 아비가 원하는 인생을 살라”라고 한다. 집안을 위해 얼굴도 모르는 여성과 그를 혼인시키기도 했다. 심덕은 두 동생이 있는 맏이다. 관비 장학생으로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그처럼 두 동생 역시 유학을 꿈꾼다. 그러나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심덕이 동생들의 유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책임지는 상황이다.
‘사의 찬미’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일제 치하 조국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함께 ‘그리움’의 정서로 바꿔 납득성을 부여한다. 심덕과 우진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며 서로 행복했던 시간을 그리워한다.
드라마는 속박과 자유라는 두 대척점 사이에 우진을 둔다. 속박에는 그의 아버지와 아내, 가업, 그리고 일제 치하의 조국이 연결된다. 반면, 자유에는 심덕, 문학, 조국의 독립이 연결되며 우진은 자유를 계속해서 갈망한다.
둘의 첫 만남 당시 우진은 시인 아리시마 다케오의 글을 읽고 있었다. 그 순간 심덕은 그에게 반한다. 이후 둘은 아리시마 다케오가 연인과 자살했다는 호외를 듣는다. 심덕은 우진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랑을 했으면 헤어지면 된다”라며 왜 이런 선택을 한 건지 의아해 한다. 그러나 우진은 “평생 겪어야 할 그리움이 두려웠을 것”이라며 드라마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를 읊는다.
심덕은 “잊지 못할 그리움은 없다”라고 대답하며 가정이 있는 우진에게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5년 후, 심덕은 자신의 가창회에서 떠나는 우진을 보자 그를 따라 무대를 박차고 뛰쳐나간다. 5년 전 단언과는 달리 그에게 “당신을 잊은 적이 없었다”라고 고하며 자신의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한다.
서로를 그리워한 두 사람이 끝내 동반 죽음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명분은 확실했다. 심덕은 동생을 위한 후원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추악한 소문에 시달린다. 게다가 일본에서의 레코드 녹음이 끝난 후 돌아오면 가족을 볼모로 조선총독부의 촉탁 가수가 되어야 한다. 동경에 있는 우진에게는 아내(박선임)가 찾아온다. 아내는 아버지께서 곡기를 끊었는데, 우진이 돌아와 회사 업무를 재개해야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자신의 영혼이 죽어버리는 조선에도, 도리를 저버리게 되는 일본에도 있을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그 사이 대한 해협에 지친 몸을 맡기게 된 것이었다.
심덕이 소프라노인 만큼 드라마는 그가 가창하는 노래를 통해 정서를 표현한다. 첫 등장에서 심덕이 부른 노래는 이탈리아 고전 가곡 ‘카로 미오 벤(Caro mio ben)’. 제목의 뜻과 같이, 이어 만날 그의 ‘다정한 연인’ 우진을 연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후 그는 우진의 고향 목포에서 그가 이미 결혼하였음을 알고는 목이 메어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심덕을 잠시 짝사랑하고, 그들의 마음을 눈치챘던 난파(이지훈)가 이어 “곡이 슬퍼서 연주하지 못하게 했다”라며 연주하는 바이올린 곡이 그들의 상황을 대변할 뿐이다.
첫 번째 이별 후 5년이 지나고, 우진을 다시 만나게 되는 첫 독창회에서 심덕은 헨델의 소프라노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를 가창한다. 비참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자유를 염원하는 가사처럼 심덕은 우진과 그리운 자유를 되찾기 위해 바닷속으로 영영 사라진다.
이종석과 신혜선의 연기는 이 드라마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신혜선은 실제 ‘왈녀’라고 불릴 만큼 활발했다는 윤심덕의 모습부터, 죽음을 앞에 두고 조용히 우울감을 표현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표현한다. 이종석은 타 작품들에서 그래왔듯, 이 작품에서도 정의를 추구하고 독백을 자주 한다. 그렇지만 그가 연기하는 우진은 담담하면서 고풍스러운 게, 절절했던 그 시대의 사랑과 썩 잘 어울린다.
◆시식평 - 이제는 장르가 이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