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폐플라스틱이 눈앞서 재생 나프타로…SK 연구원들 ‘脫탄소 의지’ 활활

다시 기업을 뛰게 하자

3부. 혁신현장을 가다

<9> ESG의 현장…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세계 최초로 재생 클러스터 구축

'환경 친화적' 후처리 공정 거쳐

고품질 투명 재생 나프타 생산

SKGC, 2025년 상용화 겨냥해

울산에 '3대 재활용 기술' 집적

에코플랜트도 폐기물 활용 가속


최근 방문한 대전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이곳에는 막 완공된 폐플라스틱 재활용 데모플랜트(시범 단계 생산 설비)가 한창 가동되고 있었다. 폐비닐에 열을 가해 만들어진 검은 열분해유가 기나긴 파이프라인을 지나 투명한 재생 나프타로 탈바꿈했다. 나프타는 플라스틱의 쌀이라고 불리는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로 원래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생산된다. 하지만 SK의 첨단 기술 연구 단지에서는 원유 없이도 쓰고 버려진 비닐이나 페트병만으로도 플라스틱 원료가 만들어졌다. 무더위 와중에 뜨거운 공장 안에서 업무에 열중하는 연구원들의 눈빛에는 탄소 중립(탄소 순 배출량 0) 사회를 앞당기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환경부는 SK의 이 같은 공정으로 플라스틱 쓰레기 1톤을 처리할 때 소각하지 않고 열분해함으로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고 2.7톤가량 더 줄일 수 있다고 공식 인증해줬다.








플라스틱 재활용 설비에서 핵심적인 공정은 바로 ‘후처리’ 작업이다. 이 공정으로 열분해유에 들어 있는 질소·염소 등 불순물이 제거된다. 불순물이 없어져야만 폐플라스틱이 새 플라스틱에 가까운 우수한 제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차세대 재활용 기술인 후처리는 SK이노베이션의 화학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SKGC)이 개발한 것으로 국내에서 이 기술을 확보한 기업은 SK지오센트릭이 유일하다.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폐플라스틱으로부터 만들어낸 열분해유를 정유·석유화학 공정 원료로 투입한 바 있다.



SK가 후처리 기술을 비롯해 개발을 집중하는 플라스틱 재활용 분야는 화학적 재활용으로 폐플라스틱을 화학반응을 통해 재활용하는 핵심 기술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을 기계로 분쇄한 뒤 녹이는 물리적 재활용 방식보다 재생되는 플라스틱 품질이 우수하다. 또한 반복적인 재활용이 가능해 플라스틱의 환경오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관련기사



SK지오센트릭은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울산 내 21만 5000㎡(약 6만 5000평) 부지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열분해, 해중합,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등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모두 한곳에 모아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은 SK가 세계 최초다. 현재 SK지오센트릭은 3대 재활용 기술을 모두 확보했다. 다양한 종류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면 3대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SK지오센트릭 측의 설명이다.

SK지오센트릭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진출도 추진 중이다. 프랑스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짓기 위해 프랑스 수에즈, 캐나다 루프인더스트리와 함께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간 7만 톤 규모의 재생 플라스틱이 생산되는 대규모 공장이 세워진다. SK지오센트릭은 아시아에도 플라스틱 재활용 생산 거점을 두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SK의 기술력을 눈여겨본 해외 기업들이 탄소 중립에 대비하기 위해 SK지오센트릭에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지오센트릭은 재활용 플라스틱 사업을 선점해 미래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환경오염 우려로 인해 플라스틱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재생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어 고품질 재생 원료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미 페트(PET) 재생 원료는 일반적인 페트 원료에 비해 50~70%가량 비싸게 팔린다. 향후 세계 각국으로 재생 플라스틱 의무화가 확산될 수록 공급자인 SK지오센트릭은 수익 창출의 기회가 커지는 셈이다. 컨설팅 업체 삼일PWC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21년 424억 달러(약 56조 원)에서 향후 연평균 7.4% 성장해 2027년에는 약 63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 즈음이 되면 전체 플라스틱 중 60% 정도가 재활용 제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SK그룹에서 SK지오센트릭 외에 SK에코플랜트의 친환경 사업도 주목된다. 환경·신재생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SK에코플랜트는 폐기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단순히 폐기물 처리가 아닌 순환경제에서 에너지 산업으로 환경 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계획이다. 폐기물을 태울 때 발생하는 열이나 폐기물을 태우고 남는 소각재, 수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수 찌꺼기 등은 이미 새로운 자원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자사 소각 시설에서 소각 후 남는 폐열을 활용해 인근 공장이나 산업 단지에 스팀을 공급하거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전기와 열에너지를 제공한다. 또한 소각재를 보도블록이나 대형 옹벽 블록 등으로 재활용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SK에코플랜트는 인공지능(AI) 솔루션을 소각 시설에 도입하며 환경 사업을 고도화하는 데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국내 최초로 소각로 AI 운전 최적화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를 적용한 결과 폐기물 성상에 따라 들쑥날쑥하게 변하던 소각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됐고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이 각각 66%, 33% 감소했다.

순환경제 사업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는 쓰레기 매립이 수년 내로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확보한 매립지의 공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버린 플라스틱을 수거해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탈바꿈하는 재활용 기술을 상용화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