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의 강제추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보험금을 지급했더라도 가해자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근로복지공단이 A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부하직원인 B씨를 상대로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돼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A씨에게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B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로복지공단은 B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유족에게 보험금 1억6000여만원을 지급했고, 이후 A씨에게 구상금을 청구했다. 산재보험법 87조 1항은 제3자의 행위로 인한 재해일 경우 제3자에게 구상금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1, 2심은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동료 근로자의 가해행위가 사회적 비난성이 매우 큰 경우 동료 근로자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고의로 재해사고를 야기한 동료 근로자에게 구상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동일한 사업주에 의해 고용된 동료 근로자로 인한 업무상 재해의 경우 그 동료 근로자는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구상의무가 있는 제3자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구상권 행사의 상대방인 '제3자'란 재해 근로자와 산업재해보상보험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재해 근로자에 대한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한다"며 "동일한 사업주에 의해 고용된 동료 근로자의 행위로 인해 업무상의 재해를 입은 경우 그 동료 근로자는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제3자'에서 제외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동료 근로자에 의한 가해행위로 인해 발생한 업무상 재해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이 궁극적인 보상책임을 지는 것이 산재보험의 성격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상제도가 가해자를 처벌·응징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고, 가해행위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의 기준도 모호해 그 예외를 인정할 경우 오히려 산재보험에 관한 법정안정성을 해할 수 있다"며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대법원은 기존 판례 법리를 유지하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