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냥 예전처럼 열심히 할 뿐입니다.”
최근 만난 한 국내 핵심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정치권의 기업 활동 지원 정책 관련 추진 상황에 대해 별 미련이 없다는 듯 이같이 말했다. 지지부진한 지원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달라며 괜히 정치권에 목소리를 냈다가 자칫 ‘미운털’이 박히느니 그냥 현상 유지라도 하는 게 낫다는 경험이 뇌리에 새겨진 탓이다. 애초에 국내 기업들의 주요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는 정부 지원에 힘입었다기보다 자체적인 노력 덕분이었다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최첨단 신산업 경쟁을 지켜보고 있자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워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미국은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산업에서 자국 기업 보호를 노골적으로 천명하면서 각종 지원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반도체지원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은 여야 대립 상황에서도 상·하원, 대통령 서명 등을 일사천리로 풀어가며 힘을 실어줬다. 중국과 일본·유럽연합(EU) 등도 천문학적인 지원 예산을 쏟아부으며 기업에 총칼을 쥐여주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야 갈등, 주민·시민단체 민원 제기 등으로 지원책 시행은커녕 사소한 규제 완화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기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다수당인 야당이 국회를 꽉 잡고 협조하지 않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 사업이 하염없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이 투자를 한다고 해도 각종 규제와 비협조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정치권에 엄중한 글로벌 경쟁 상황을 하소연하기는커녕 부산국제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전에나 동원되고 있는 기업인들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만 남는다. 한국 경제가 ‘원팀’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되짚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