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박물관이 자칫 외교문제로 번질 뻔 한 한중일 고대 유물 전시회의 한국사 연표 왜곡과 관련해 한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연표도 모두 철거하는 등 성의 없는 ‘미봉책’으로 대응해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 관계자는 16일 “(문제가 된) 한국사 연표 철거는 다 이뤄졌다”며 “우리뿐 아니라 해당 전시실에 있던 중국, 일본 연표도 모두 철거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박물관은 전시 안내자료로 제작된 한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만 누락한 채 표기해 문제가 제기됐다. 중국의 한반도 역사 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 논란을 재점화 할 만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전시를 공동주최한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정정을 요구하자, 중국 국가박물관 측은 고구려와 발해를 포함한 연표를 다시 만드는 대신 한국사 연표 자체를 빼버렸다. 논란을 의식한 듯 중국과 일본사 연표까지 모두 현장에서 철거한 것으로 확인됐다. 잘못 알려진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연표 자체를 없앤 것이다.
문제가 된 전시는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지난 7월 26일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개막한 ‘동방길금(東方吉金)-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이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엄격한 방역조치 때문에 1개월의 격리기간이 있어 우리 국립박물관 측 학예연구사가 현장 방문을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연표가 왜곡된 사실이 지난 13일 언론을 통해 뒤늦게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즉시 중국 측에 두 차례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수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시 관람 중단은 물론, 전시 유물을 철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대응했고 중국 측은 ‘연표 철거’ 의사를 밝혔다. 박물관은 전시 개막 이전인 지난 6월30일 중국 박물관 측에 고구려와 발해 건국 연도가 포함된 연표를 전달한 바 있다. 박물관은 지난 15일 저녁 “중국 국가박물관으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특별전 ‘동방길금: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에 게시된 문제의 한국사 연표를 철거한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문제가 된 한국사 연표를 바로잡게 했어야 하는데 ‘연표 철거’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시장에 놓이는 연표는 출품 유물의 역사적 맥락과 배경 지식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시는 3주 후인 다음 달 9일까지로 예정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우리 유물이 나가는 국제 전시와 관련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오도할 수 있는 내용을 사전에 검토하고 시정 요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