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소아 환자 1명을 응급실에 보내려면 구급차를 타고 전화를 열통 넘게 돌립니다. 전라남도를 몇시간 돌다가 병원을 찾지 못해 대전에서 입원하는 사례도 있을 정도죠. "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장(CNA서울아산병원장)은 16일 서울 마포구 소재 대한병원협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코로나19와 독감을 넘어 각종 호흡기바이러스질환이 함께 유행하는 멀티데믹에 대비해 종합적인 치료계획 수립이 시급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협회에 따르면 올해 여름부터 일선 아동병원에서는 코로나19 외에 파라인플루엔자와 같은 인플루엔자 감염 사례가 이례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영유아에서 수족구병 등 각종 호흡기바이러스질환까지 유행하면서 멀티데믹 우려가 커지는 실정이다.
실제 방역당국은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인플루엔자 의사환자분율이 1000명 당 5.1명으로 유행기준(4.9명)을 초과했다"며 이날 전국에 인플루엔자(독감) 유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독감 유행주의보가 발령된 것이다. 통상 11~12월경 주의보가 발령됐음을 고려할 때 시기도 예년보다 2~3개월 가량 앞당겨졌다.
아동병원협회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으로 응급실 등 필수의료 공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멀티데믹'이 현실화한다면 일선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용재 부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 병원장)은 ”올해는 예년과 달리 여름에도 독감이 다수 발생했고, 각종 호흡기 바이러스와 수족구병 등이 전년대비 크게 급증하는 등 멀티데믹 전조가 올 여름 내내 나타났다“며 ”방역당국에서 멀티데믹 발생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아동병원들과 긴밀한 협조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회가 첫 번째로 내세운 요구사항은 한번에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를 확진 분별할 수 있는 분자현장검사를 허가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사용되는 인플루엔자 항원검사의 경우 정확도가 떨어져 현장 활용도가 낮다는 이유다. 최 부회장은 "임상에서는 대개 경험적으로 타미플루와 같은 치료제를 처방하고 있다"며 "멀티데믹이 초래되면 코로나19 여부를 감별해야 하는데 기허가된 항원검사만으로 감당하기엔 한계가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아청소년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역별 이송체계 구축도 시급하다. 정성관 부회장(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코로나19 합병증과 독감, 각종 호흡기바이러스 환자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면 지역별 소아청소년 진료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 자명하다"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아동병원 중심의 환자 이송 체계를 사전에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회에 따르면 올해 5월 중순 기준 5~11세 소아의 약 65%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 중 20~75%는 극심한 피로감과 호흡곤란, 수면장애, 인지장애, 기분장애 등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증상 표현이 어려운 소아청소년의 경우 코로나19 후유증을 장기간 방치하게 되면 다기관염증증후군, 심근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박양동 회장은 "미국식품의약국(FDA)과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중증 다기관염증증후군과 사망을 줄이기 위해 5~11세 뿐 아니라 5세 미만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며 "소아청소년 자녀를 둔 보호자들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접종에 동참할 수 있도록 방역당국의 투명한 정보 공유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