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은 2018년부터 이어온 정부의 감사인주기적지정제도가 경영에 큰 부담이 된다고 토로한다. 지정감사인의 권한 남용과 불합리한 요청이 늘었다는 불만이 빗발치면서 폐지를 건의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18일 한국상장사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상장회사 평균 감사 보수는 2017년 1억 2500만 원에서 지난해 2억 8300만 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는 감사인주기적지정제 시행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기업들이 정부가 지정한 회계법인이 요구하는 대로 감사 보수를 줘야 하는 탓에 기업들은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감사인주기적지정제는 2018년 신외부감사법 도입으로 시행된 제도다. 이 제도는 6개 사업연도 연속 외부감사인을 자율로 선임한 상장사와 소유·경영 미분리 대형 비상장회사는 다음 3개 사업연도 동안 정부가 지정한 감사인에게 감사를 받아야 한다. 산업계에서 일어나는 회계 부정을 막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만들어졌다.
지난해 기준 전체 상장사의 50% 이상이 이 제도를 적용 받았다. 산업계에서는 불만이 거세다. 비용 증가 외에도 정부 지정감사인의 전문성, 감사 품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감사로 기업과 감사인 간 분쟁 사례가 늘어나는 모습도 눈에 띈다.
회계 투명성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모습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 따르면 한국의 회계 투명 순위는 2017년 63개국 중 63위로 꼴찌였다. 2020년 46위까지 올랐으나 지난해에는 다시 53위로 추락했다.
이에 중소·중견 기업이 주축이 된 경제 단체들은 감사인주기적지정제 폐지를 건의하고 있다. 7월 중소기업중앙회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함께 제도 폐지를 위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감사인주기적지정제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고 현장에서도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박양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감사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기업 자율성을 침해하고 시장 기능을 왜곡해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제도”라며 “조속히 폐지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하도록 하되 일정 기간 이후 감사인을 교체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