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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BIFF 리뷰] '바람의 향기' 따뜻한 사람 냄새, 지독한 느림의 미학

[리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람의 향기'

이란 감독 하디 모하게흐 연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




코로나19로 주춤했던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가 3년 만에 이전의 모습을 찾았다. 개·폐막식을 비롯한 이벤트, 파티 등은 성대해지고, 관객과 영화인이 함께 호흡하는 대면 행사가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축제에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설렘이 가득하다. BIFF가 다시, 영화의 바다가 됐다.



'바람의 향기' 스틸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바람의 향기' 스틸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바람의 향기'는 따뜻한 사람의 향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잔잔한 바람이 늘 우리 곁에 존재하듯 인간의 선의는 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도 힘든 현대 사회에서 한 번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바람의 향기'는 이란의 외딴 시골 마을, 하반신 장애가 있는 남자가 전신 마비 상태 아들을 간호하며 살고 있는 집에 전기가 끊기면서 전력 담당자가 방문해 펼쳐지는 이야기다. 전력 담당자는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며 이 마을 저 마을 다닌다.

작품에는 하반신에 장애가 있는 남자, 시각 장애인이 등장하고 장애물에 걸려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인물들이 나온다.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는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고, 그 위에 돌멩이는 아슬아슬하게 깔려 있다. 이런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국가나 제도가 아닌, 옆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전력 담당자는 하반신 장애가 있는 남자의 집에 전기를 끌어 주기 위해 며칠 동안 다른 마을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찾는다. 심지어 전기 공사가 끝난 후에도 전신 마비 아들의 욕창 방지 매트를 사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반신에 장애가 있는 남자는 길을 가다가 실을 바늘귀에 꿰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도와준다. 거동이 불편한 그가 먼 길을 돌아와 도움을 주고,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당연한 이웃의 온정을 다시 일깨우게 한다.

도움의 손길은 이웃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뻗힌다. 전력 담당자는 부품을 구하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마을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시각 장애인을 만난다. 그는 "데이트를 하러 가야 되니 태워 달라"는 시각 장애인의 부탁을 들어주고, 데이트 상대에게 줄 꽃다발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샛노란 꽃다발이 데이트 상대에게 전해지는 순간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흐르고, 이에 발맞추기 위해 각박해진 현대 사회에서 생각할 만한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어려워진 사회,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게 어색해진 사회,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사회.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요즘, 인간의 순수한 선의는 아직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작품은 지독할 정도로 느린 호흡으로 전개된다. 인물들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온전히 카메라에 담고, 느린 발걸음도 천천히 기다려준다. 인물들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작업을 하다 시간이 늦어지면, 안달내지 않고 다음날을 기다린다. 이런 느림의 미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은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거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중동의 자연 경관은 볼거리를 더한다. 광활한 대지와 산, 끝도 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 돌로 만들어진 집은 이색적이다. 이 위를 뛰어노는 닭, 염소, 조랑말, 강아지 등은 정겨운 시골의 매력을 높인다. 드넓은 자연은 마치 인간을 품어주는 부모님의 품 같다.


부산=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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