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세계 각국에 대출한 금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강달러 등 겹악재로 위기에 빠진 개발도상국들이 이들 기관에 줄줄이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IMF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93개국에 총 2580억 달러(약 370조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지원을 약속한 금액도 16개국 총 900억 달러(약 130조 원)에 달한다. 실제 집행된 대출 총액은 지난달 말 기준 1350억 달러(약 194조 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과 비교해 45%, 2017년보다는 두 배 넘게 급증한 액수다.
세계은행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세계은행의 전체 대출액은 2019년보다 53% 늘어난 1040억 달러(약 150조 원)로 집계됐다. WSJ는 “개발도상국들이 이들 두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에너지 및 식량 가격 상승,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따른 여파에 대응하려 하면서 대출 규모가 모두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IMF와 세계은행에서 지원받으려는 신흥국들의 발길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및 식량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다수의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다.
다급해진 신흥국들이 민간 금융 시장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지만 재정 마련은 쉽지 않다. 금융 정보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신흥국들이 발행한 국채 규모는 88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는 2015년 이후 가장 적다. IMF는 저소득 국가의 60% 이상이 채무 이행 능력이 없거나 채무 불이행 위험이 큰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가 심화할 경우 IMF와 세계은행의 대출 재원이 바닥을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까지는 주요 신흥국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위기 대응) 능력도 갖추고 있다”며 “하지만 중국이나 영국 등이 IMF를 이용하게 된다면 자금이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IMF는 대출 여력이 충분하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IMF는 지난해 6500억 달러(약 933조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특별인출권(SDR)을 발행했다. 이를 통해 약 1조 달러 규모의 대출 여력를 확보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