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쌀쌀해지니까 새 옷이 갖고싶어졌어요. 따스한 재킷도 필요하고, 스웨터도 하나 사고 싶고, 가을에 어울리는 바지도 한 벌...온라인 쇼핑몰을 헤매다 두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정신이 들었어요. 얼마 입지도 않을 옷, 이왕이면 구제숍에서 사볼까? 하고요. 가장 가까운 홍대 빈티지 상권을 탐방해보기로 했죠.
TMI지만 에디터는 구제 쇼핑을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홍대(합정, 상수 포함)에 얼마나 많은 구제숍이 있는지 알고 나선 정말 놀랐어요. 지도에서 ‘구제의류’로 검색하면 홍대권에만 40곳이 넘더라구요. 어떻게 동선을 짜볼까 고민하다가 서울 구제숍 지도인 9제할지도와 구제쇼핑을 좋아하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들른 11곳(코코빈티지 외엔 모두 정찰제) 소개할게요. 에디터의 취향(패션에 큰 관심 없고 무난한 옷 좋아하는 편)이 반영된 후기니까 직접 다녀보고 자신만의 구제 루트를 만드시길요.
지칠 때쯤 찾아오는...득템의 순간
▶옴니피플트렌디, 옴니피플헤비
홍대 빈티지 탐방에서 에디터가 처음으로 들어간 가게는 옴니피플트렌디였어요. 처음이니까 좀 수줍수줍 머뭇머뭇하면서 들어갔는데 열심히 옷 고르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지 뭐예요. 옴니피플은 미국 구제옷 위주예요. 칼하트, 폴로, 리바이스, 디키즈 같은 브랜드 옷들을 원없이 볼 수 있었죠. 대신 사이즈가 그냥 라지도 아닌, XXL 이상이 많았어요. 옴니피플헤비는 야상, 부츠 등 밀리터리룩으로 유명해요. 실제 미군들이 입었던 의류나 용품들도 많다고.
홍대 구제숍을 자주 찾는 지구용의 이피아 객원 에디터(갑자기 등장)에 의하면, 옴니피플은 인스타 관리를 열심히 하신대요. 그래서 방문 전에 인스타만 훑고 가도 좋은 물건을 겟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피프티피프티
간판에 아예 “세이브 더 플래닛, 바이 빈티지”라고 적혀 있어서 좀 반가웠어요.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미국 빈티지 위주였는데 거의 남성용으로 나온, 사이즈 큰 제품들이더라고요. 발목까지 내려오는 나이키 치마가 있었는데 얼마나 자주 입을지 고민하다 결국 내려놨어요.
▶서울빈티지
다른 구제숍들과는 다른, 미니멀한 분위기에 끌려서 들어갔어요. 명품 구제옷, 그 중에서도 버버리 비중이 높았고요.
▶스윙잉서울 홍대점, 울트라빈티지
스윙잉서울은 2층 규모라 꽤 크고 데님 제품이 많은 편. 울트라빈티지는 별다른 특이점(?)은 못 찾았어요. 에디터가 막눈이라 그럴 수도 있으니까 꼭 가보고 판단하기.
▶빈티지산타(위 사진)
여기도 아메리칸 브랜드 위주의 구제숍인데 넓고 물량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다른 곳보다 개성 있는 물건이 많았고요. 몽클레어, 셀린 같은 고가 브랜드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었어요. 에디터 취향은 아니긴 했지만 꼼꼼히 둘러보면 가을·겨울옷 한 보따리 득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코코빈티지(아래 사진)
1층 입구에는 레이스 크롭탑처럼 손바닥 만한 옷들이 잔뜩이라 이 할미는 걸음을 돌려야 되나 보다...싶었는데 지하의 넓은 매장에 엄청 다양한 옷들이 걸려 있더라고요. 여성복 위주. 버버리, 펜디, 디올 등등 명품 구제옷도 꽤 있었어요. 가격을 일일이 여쭤봐야 한다는 게 단점.
여기까지 돌아보고 났더니 체력이 쭉쭉 떨어지더라고요. 걷기도 많이 걸었고, ‘아메리칸 캐주얼’은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가격이 생각 만큼 저렴하진 않았어요. 보세 출신들도 보통 3만~4만원 이상, 브랜드 출신들은 브랜드별로 다르지만 가볍게 10만원을 넘기는 경우가 많았고요. 지구를 위해 구제옷을 사겠다고 마음 먹긴 했지만 그 정도 가격이면 좀 더 보태서 새 옷을 살까 싶은 생각도 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아래 두 곳에서 불이 붙어버렸어요.
▶하이마운틴빈티지
올 4월에 문을 연 곳인데, 지구용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바키 디자이너의 친구분이 소개해줬어요. 큰 기대 없이 갔는데...아메리칸 캐주얼도 없진 않지만 에디터 취향인 단정+무난한 옷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교복처럼 아무 데나 걸칠 수 있을 듯한 아디다스 가을용 점퍼(길어서 더 따뜻해 보이더라고요)를 우선 집어들었어요.
그런데 또 더 자세히 보니까 곳곳에 한번 시도해볼 수 있겠다 싶은 살짝 과감한 옷들도 숨어있는 거예요. 에디터 기준으로 살짝 과감한데 그게 또 너무 과하진 않아서 2주에 한두 번은 입어도 되겠다 싶었어요. 이런 ‘과감한 옷’을 새 옷으로 사면 몇 번이나 입을 수 있을까, 갖고 있는 옷들과 어울리지 않아서 실패하지 않을까 부담스러운데 구제옷은 부담이 덜하죠. 그리고 구제옷 가게에서 건진 개성적인 옷은 어지간하면 길에서 마주치기 힘든 나만의 옷이기도 하고요.
요렇게 두 벌이 9만2000원. 계산하면서 여쭤봤더니 주로 일, 월, 금요일 주 3회 옷을 들여오신대요.
▶합정빈티지
합정역 5번 출구지만 지하라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 거의 여성복이에요. 니트류는 보풀 때문에라도 구제숍에서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니트류는 상태가 너무 좋더라고요. 겨울에 주구장창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빨강 가디건이랑 캠핑 분위기를 돋궈줄 에스닉풍 조끼, 이렇게 두 벌을 8만원에 샀어요. 시크하게 손님들을 방치(?)하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직원분들이 친근하게 그치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도와주고 설명해주세요.
▶페이지원
상수역 근처의 꽤 규모가 큰 구제숍이에요. 1층은 여성복, 2층은 남성복. 여기는 무엇보다도 옷이 정말 새것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상태가 훌륭해서 놀랐어요. 감성 넘치는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 덕분일까요? 빈티지 찻잔, 소품류도 판매중. 완전 새 매장 같은데 알고 보니 홍대 인근에서 시작해 자리를 옮겨가며 10년 넘게 운영된 곳이래요.
창고형 구제숍, 전국에 있어요
전반적인 소감은 1. 신난다 2. 관심을 갖기 시작했더니 눈에 들어오는 구제옷 가게가 숱하게 많다 3.그렇지만 헐값 득템까진 아니다, 였어요. 구제옷을 잘 골라서 매장에 디스플레이하고 가게 월세·인건비 내는 거 생각하면 당연한 가격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그만큼 잘 골라서 잘 진열해 놨으니까 에디터 같은 초보도 편하게 득템할 수 있었던 거고요. 대부분 정찰제라 흥정할 필요가 없단 점도 안심.
구제 쇼핑에 익숙한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홍대는 아무래도 다른 구제 상권(!)보다 비싼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의 이피아 객원에디터는 동묘도 가봤대요. 꼭 옷이 아니더라도 구경할 게 많다고 해요. 동묘는 특히 옷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1000원, 2000원에 파는 ‘옷무덤’이 유명한데 안목과 체력이 없는 에디터는 자신이 없어요.
그리고 이피아 객원에디터의 “창고형 구제숍도 가봐요”란 한 마디! 이피아 객원에디터는 김포 ‘옷파는 야옹이’에 다녀왔는데 창고인 만큼 종류가 다양했지만 가격이 또 생각 만큼 저렴하진 않았대요. 오로지 그 곳만을 위해 김포까지 가기엔 좀 부담스러웠다고.
그래서 좀 더 검색해봤더니 김포에는 빈티지프리마켓, 3579샵 등 또 다른 창고형 구제숍들이 꽤 있더라고요. 지역을 넓혀보니 인천 부평구 일구샵, 경기도 광주 도쿄유즈드와 세컨핸드와 로드무역, 경기도 화성 빈티지원 화성점, 울산 참새상회, 부산의 빈티지원 부산점, 광주광역시 빛고을유통구제의류, 대구 싸다샵, 대전의 빈티지원 대전점...전국 곳곳에 있는 거예요. 제주도는 면적 대비 정말 많은 구제숍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유일하게 강원도만 못 찾았어요. 강원도의 창고형 구제숍을 아시는 용사님은 적극 제보 부탁드려요.
구제 쇼핑할 결심, 하셨나요? 당장 모든 옷을 구제로 충당하긴 어렵겠지만 한벌 두벌씩 늘려나가는 것만으로도 지구에 의미가 있을 거예요. 성공적인 쇼핑 기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