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인터뷰]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 "존엄사 논의 전에 생명윤리 되돌아봐야"

경제적인 문제로 선택한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며 비윤리적 행위

촘촘한 복지체계 구축이 급선무

소득중심 정책에 생명 존엄성 외면

저출산·고령화만 가속화시킬 것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 사진 제공=국가생명윤리정책원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 사진 제공=국가생명윤리정책원




“의사 조력 자살, 안락사, 존엄사 등의 허용을 논의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과연 생명 윤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뒤돌아 봐야 합니다. 자식이나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존엄사를 택하는 경우 과연 이것이 스스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사각지대 없이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체계를 갖춘 후에 존엄사를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16일 김명희(사진)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은 서울경제와 만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말하기 전에 인간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게 우선”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어 “생명 윤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 조력 자살 등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결국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따른 자율 의사로 선택한 존엄사가 아닌 경제적 문제가 개입된 죽음은 결코 윤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복지 시스템 구축 없이는 사회적 약자나 취약 계층의 존엄사는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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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법안이 국회에서 처음으로 발의된 후 조력 존엄사에 대한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또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장뤼크 고다르가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에서 ‘합법적인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면서 안락사에 대한 이슈가 우리 사회에서도 가열되고 있다. 조력 존엄사를 법으로 허용하는 곳은 미국 12개 주와 스위스·네덜란드·벨기에 등이며 국내 의사 조력 자살은 불법이다. 다만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가 도입되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 연명 치료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다.

김 원장은 존엄사 논의보다 시급한 것이 생명 윤리에 대한 문제 의식을 느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하면 소득을 올릴지에 모든 정책의 초점이 맞춰진 상황에서 생명의 존엄성은 계속해서 외면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물질 만능주의를 가속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로 떠오른 저출산 역시 물질 만능주의의 결과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한국의 저출산이 해결되지 않으면 3세대 후 인구는 현재의 6%가 되고 인구의 대부분은 60세 이상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할 만큼 한국의 저출산은 심각한 문제”라며 “저출산이 과연 어디서 비롯됐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가족 구성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교육 수준을 결정하는 상황 등이 맞물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저출산의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아파트 특별 분양 등 각종 혜택은 결혼을 전제로 한 이들에게 돌아가고 부부가 아니어도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은 이들, 싱글맘·싱글대디 등은 정부의 혜택에서 모두 소외된 점도 저출산을 가속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의 출산율이 우리나라보다 높고 아이를 처음으로 낳는 연령이 낮은 것도 결국 이러한 복지 시스템이 결혼한 부부가 아니어도, 혼자여도,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하고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에 대한 편견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 원장은 저출산·고령화로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국가의 재정과 존립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과 고령화가 초래할 문제를 연구하는 예산 부족과 정부의 성향에 좌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명 윤리 캠페인을 벌여 대국민 인식 개선을 이끌어내려 해도 예산이 한정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그래서 공익 법인을 설립해 기부금을 모았는데 이사장님을 비롯해 저, 이사님들이 7000만 원 정도 한 것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생명 윤리는 정부의 방향성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대상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휘둘리는 부분이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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