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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듯 지나가는 만남에도 하느님 은총이” 허영엽 신부, 에세이집 출간





“한참이 지나 사제관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 보니 아이가 다시 와 있었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서둘러 말했다. “신부님, 저 이제 집으로 갈게요.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신부님이 쓰시던 손수건 한 장만 주세요. 그 손수건을 보면 신부님 생각이 날 테니까요…” 내 손수건을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아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진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신부님, 손수건 한 장 주실래요?’ 중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허영엽 신부의 에세이집 ‘당신의 만나 봤으며 합니다’(카톨릭출판사)의 한 구절이다. 2009년 출간된 ‘신부님, 손수건 한 장 주실래요?’의 개정판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만남 안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깃들어 있음을 일깨운다. 개정판 이후 만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추가하고 기존 내용도 새로 다듬었다.



허 신부는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교구장 수석비서, 교구 대변인 등의 소임을 맡으며 오랫동안 ‘서울대교구의 입’ 역할을 했다. 또 글을 통해 가톨릭 교리나 성경 관련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교회 내 인물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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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허 신부는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 등 교회의 큰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 본당에서 사제 생활을 하며 만났던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 등을 전해준다. 특히 삼 형제가 모두 사제인 허 신부의 형제간 우애도 녹아 있고 자식을 모두 하느님께 봉헌한 어머니의 깊은 신심도 느껴진다. 또 인연을 맺었던 많은 이들과의 만남과 이별, 사제 생활의 기쁨과 슬픔, 가족들에 대한 사랑 등이 담겨있다.

“신부가 된 후에도 가끔 월요일에 어머니를 찾아가 뵙곤 했다. 그때도 낮잠을 자다가 눈을 떠 보면 어머니는 예전 그 모습처럼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셨다. 무슨 기도를 바치셨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아마도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았을까. 언젠가 어머니께 장난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늘 묵주 기도를 이렇게 열심히 바치시는데 기도 중에 성모님을 만나기도 해요?” 내 장난스러운 질문에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이렇게 답하셨다. “어느 때는 묵주 기도 후에 성호를 긋고 나면 성모님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계신단다.”(‘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네’ 중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버지의 허리를 꽉 붙잡고 등에 머리를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묵상 중에 아버지의 모습이 예수님과 겹쳐졌다. 아버지 등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예수님의 등에 기대고 있었다. 달리는 자전거 뒷자리에서 예수님의 허리를 꼭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심을 느꼈다. 아버지의 사랑과 따스한 체온 속에 주님께서 계셨다.”(‘그분의 등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중에서)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은 추천사에서 “허영엽 마티아 신부님의 글에는 그동안 삶에서 만났던 수많은 분들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며 “하지만 단순히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재해석하여 우리가 신앙적으로 더 깊고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했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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