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리니언시의 함정…과징금 피한 현대로템, 되레 독점 강화하나

■담합신고, '경쟁사 손보기' 악용 논란

철도차량 담합 3사 564억 과징금

현대로템, 자진신고로 323억 면제

경쟁업체는 입찰자격 제한 등 타격

고속철도 차량가격 6년새 49%↑

시장 독점땐 결국 국민 부담으로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자진신고 기업에 혜택을 주는 리니언시 제도가 되레 경쟁사를 어려움에 빠뜨려 독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철도차량 입찰 담합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현대로템(064350)이 자진 신고로 과징금을 면제받은 반면 중소업체들은 100억 원 안팎의 과징금을 물고 입찰 참가 자격도 제한되는 등 위기에 빠지면서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최근 공정위로부터 323억 600만 원의 과징금 납부를 면제받았다고 공시했다. 현대로템이 철도차량 입찰 담합을 자진 신고하고 ‘리니언시 제도’를 적용받은 사실이 간접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앞서 현대로템·우진산전·다원시스(068240) 등 3개 철도 제조업체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서울교통공사 등이 발주한 철도차량 입찰에서 담합해 공정위로부터 총 564억 78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리니언시는 부당 공동행위(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그 사실을 자진 신고해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고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면 시정 조치나 과징금 등 제재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1순위 신고자의 과징금은 100%, 2순위 신고자의 과징금은 50% 면제된다. 부과된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은 현대로템은 이번 사건의 1순위 신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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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대로템이 담합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합의 과정에서 스스로 ‘맏형’이라고 칭하는 등 강한 중재 의지를 보였고 3사 간 합의를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은 우진산전·다원시스가 본격 입찰에 참여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시장독점에 따른 이익이 줄어든 터라 담합의 유인도 컸다. 공정위 관계자는 “자진 신고를 하려면 담합 증거 자료를 보유해야 하는데 들러리 업체들보다는 담합 주도 업체가 자료를 많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며 “담합 주도 업체가 리니언시를 받을 가능성도 높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담합 사건은 결과적으로 ‘경쟁사 손보기’처럼 활용돼 현대로템의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템의 자본금(2020년 기준) 대비 과징금 비중은 5.9%에 불과한 반면 우진산전(246.6%)과 다원시스(69.3%)는 과징금으로 더 큰 타격을 입게 됐기 때문이다. 우진산전·다원시스는 공공기관 입찰에서 참가 자격 제한을 받지만 현대로템은 리니언시에 따라 면제된다. 다만 현대로템은 사건 직후 “당시 창구 역할만 했을 뿐 최종 합의는 우진산전·다원시스가 별도로 만나 실행했다”며 담합 주도 사실을 반박했다.

현대로템이 시장을 독점하게 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현대로템이 고속철도 제조 시장을 독점하면서 고속철도차량(EMU-320) 1량당 가격은 2016년 36억 9000만 원에서 올해 56억 원으로 49% 올랐다. 현대로템이 낮은 가격 등을 이유로 고속열차 입찰에 응찰하지 않으면서 인천발·수원발 KTX의 개통 시점이 2025년에서 2027년으로 미뤄지기도 했다. 당시 코레일의 발주 가격은 1량당 51억 4000만 원이었으나 현대로템은 70억 7000만 원을 제시했다.

리니언시의 부작용은 잊을 만하면 부각되는 이슈다. 과거 노래방 반주기 제조·판매 업체인 금영과 TJ미디어는 2011년 담합으로 각각 41억 1700만 원, 15억 5700만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지만 리니언시로 금영은 과징금 100%를, TJ미디어는 50%를 면제받았다. 하지만 이후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자진 신고까지 담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출이 큰 금영이 담합을 먼저 신고하고 TJ미디어가 열흘 뒤 2순위로 신고하면 2순위에 부과된 과징금을 두 업체가 반씩 나눠 내기로 한 것이다. 유한킴벌리가 대리점 23개사와 담합을 주도하고도 자진 신고로 빠져나가 대리점에만 과징금을 전가한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리니언시는 ‘필요악’이라는 견해가 많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의 특성상 현실적으로 리니언시 없이는 담합을 적발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담합 주도 업체를 리니언시 혜택에서 제외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 리니언시로 담합을 적발한 사건은 10%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6~2020년에는 71%에 달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담합 적발의 효율성과 사회정의 중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며 “리니언시 제도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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