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일상적이고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 코믹 스릴러 한 편이 올가을 극장가를 찾는다. 예측불허 전개는 짜릿한 긴장감을 주고 익살스러운 모습부터 패닉에 빠진 모습까지 다채로운 세 배우의 연기력이 작품의 몰입감을 더한다.
25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2022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옆집사람’(각본/감독 염지호)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배우 오동민, 최희진, 이정현과 염지호 감독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옆집사람’은 원서 접수비 만 원을 빌리려다 시체와 낯선 원룸에 갇힌 5년 차 경시생 찬우(오동민)의 하루를 그린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스릴러와 코미디의 맛깔나는 조합으로 신선함을 준다. 벽간 소음, 원서 접수, 블랙 아웃, 무관심한 이웃 등 일상의 사소한 소재들이 한 편의 스릴러로 재구성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단편에서부터 탁월한 기량을 입증해온 염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NH농협상과 코리안 판타스틱 배우상 심사위원 특별언급(오동민)으로 2관왕을 달성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염지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 계기로 “학교 졸업작품으로 저예산이었다"면서 "저예산으로 괜찮게 찍을만한 시나리오와 자취 경험을 고려하다 보니 원룸을 배경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아이디어 노트에 일어났을 때 옆에 시체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한 줄을 써둔 걸 발전시켜 지금의 영화를 완성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염 감독은 주인공 오동민 배우 캐스팅 계기에 대해서는 “찬우 역은 여러 후보 중에 만나고 정해야겠다고 생각해 오동민 배우 회사 측에 연락해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이 배우라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언급했다. 캐스팅이 가장 어려웠던 캐릭터로는 옆집 사람 현민을 꼽았다. 오 감독은 “추천도 받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열어놓고 오디션을 보자고 했고, 최희진 배우가 딱 맞는다고 생각해 캐스팅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정현 배우는 PD님이 다른 곳에서 만나서 추천해 주셔서 만났는데 느낌이 좋아 그 자리에서 바로 확정했다”라고 설명했다.
배우들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르의 영화라는 점에서 작품이 매력적이었다고 짚었다. 오동민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재밌게 읽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시나리오 자체도 이야기도 재밌었을뿐더러 제가 선호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또 단독 주인공으로서 책임감 있게 끌고 나갈 수 있는 연기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웹드라마에 출연하다가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던 중에 오디션에 참여했다고 밝힌 최희진은 “공부하던 당시 작품의 오디션 소식을 들었는데, 스릴러 장르를 좋아해 작품에 끌렸다”라고 했다. 반전의 주인공인 이정현은 “당시 소속 회사와 계약이 종료되던 때라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고민하는 과도기였다”라며 “오래전부터 알던 PD님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감회가 느껴졌던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작품은 찬우 시선을 따라 살인 사건을 추리하지만, 세 캐릭터가 빚어내는 시너지가 합쳐져 비로소 완성되는 영화다. 오동민은 “제가 맡은 찬우라는 인물은 경찰 공무원 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한 장수생이다. 객관적으로 시험에 대한 깊은 열정이나 생각이 있다기보다는 고시생으로 존재하는 자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워할 수 없는 찐따’라는 문장 안에서 찬우라는 인물이 살아있을 수 있도록 감독님과 대화했다”면서 “찬우라는 인물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맞닥뜨린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고, 머리를 가장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했다”라고 덧붙였다.
최희진은 “현민은 양면성이 보이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뒷부분에서는 욕망 가득한 모습이었다면 앞부분에서는 컴퓨터 공학과의 순수한 학생으로 찬우를 홀리는데 집중했고, 똑똑하고 순발력 있는 캐릭터”라고 짚었다. 이정현은 “기철은 전과자지만 돈이라는 맹목적 목적을 쫓는다는 관점에서는 순수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작품 주 배경은 원룸이라는 단절된 공간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하면서 겪었던 연출적 애로사항도 있었을 터였다. 염 감독은 “콘티뉴이티(장면 연속성) 맞추는 게 어려웠다. 배우들 스케줄이나 기술적 문제로 촬영이 시간 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콘티뉴이티 맞추는 데 몰두해 있으니까 기술 스태프들끼리 구석에 사이다병, 도넛 케이스 등 있으면 안 되는 소품을 몰래 놓기 시작했다. 일부는 찾지 못해 영화에 출연하는데 다행히 관객들이 발견하시진 못했다”라고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극 중 첫 등장 장면에서 찬우는 래퍼 염따의 상징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 코미디와 스릴러를 결합한 영화에서 웃음 포인트 중 하나는 찬우의 프리스타일 랩이었다. 이를 연기한 오동민은 “영화 전체적인 부분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하려니까 수치스러웠다. 감독님께서 어떤 구간에서는 애드리브를 요구하셨다”라며 “최대한 여러 버전으로 연기해 다양한 소스를 드리려고 했다. 이미 오케이가 나서 라임을 더 맞추고 싶었는데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오 감독이 작품의 ‘키 캐릭터’로 꼽은 현민 역의 최희진은 양면적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최희진은 “그 영화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주인공 여자 캐릭터가 소시오패스로 나온다”라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찬우를 만난 후 현민과 닮았다고 생각해 참고했다”라고 했다.
얼굴 전체에 피를 묻힌 채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정현은 “얼굴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 장면은 대역 배우가 진행하는 등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라며 “극 중 액션씬도 좁은 세트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조금 더 역동적으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3년 전에 촬영한 영화가 극장에 개봉되는 감회는 새로웠다. 무엇보다 작지만 강한 영화라고 배우들은 입을 모았다. 오동민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장르의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열고 관대한 마음으로 재밌게 즐기다 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면 묵직한 알맹이를 가져가실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라며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라 할 수 있지만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쏟아부은 열정은 크다. 그런 지점들을 알아주셨으면 감사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최희진은 “3년 전에 촬영했지만 아직도 그 기억이 떠오른다”라며 “영화가 꼭 1만 관객을 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정현 역시 “중간중간 코믹적인 부분이 많은 스릴러라 재밌게 즐겨주시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염 감독은 “제가 보는 현대사회의 화두를 전시하는 느낌으로 이것저것을 영화에 녹였다고 생각한다”라며 “중간에 옆집에 대해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일부러 모든 정보를 주지 않고 각자가 추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도였고, 무거운 메시지보다는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각자의 가십을 본 것처럼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여러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11월 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