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강한 완도 출신 이소미(23·SBI저축은행)가 15대 ‘서경퀸’ 타이틀을 품었다. “쉴 자격이 없다”며 휴일인 월요일에도 연습장을 찾는 등 승부수를 띄운 결과 좋아하는 제주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었다.
이소미는 30일 제주 서귀포의 핀크스GC(파72·6748야드)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총상금 8억 원)에서 4라운드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5타 차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상금은 1억 4400만 원. 시즌 상금랭킹은 14위에서 11위(약 5억 8400만 원)로 올라갔다. 지난해 8월 대유위니아·MBN 여자오픈 제패 이후 1년 2개월 만에 수확한 통산 4승이자 시즌 첫 승이다. 2020년 1승, 2021년 2승에 이어 3년 연속 우승 기록을 이어가며 4년 차에 통산 4승으로 강자 이미지를 굳혔다.
쟁쟁한 선수들이 거의 빠짐없이 선두권에 몰려 안갯속 경쟁이 예상됐지만 이소미는 독보적인 코스 매니지먼트로 압도적 우승을 완성했다. 270타는 2019년 우승자 최혜진의 15언더파 273타를 3타나 줄인 대회 최소타 기록이다. 이번 주 이소미는 1~4라운드에서 버디를 26개나 몰아친 ‘버디 폭격기’였다. 보기 6개와 더블 보기 1개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얼마 안 가 버디로 벌떡 일어섰다. 동료들 사이에 ‘핵인싸’로 통하는 이소미는 씩씩한 플레이와 걸음걸이가 트레이드 마크인 선수다. 톱 10에 연속 실패한 최근 3개 대회에서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좋아하는 제주 대회를 맞아 성격처럼 씩씩하게 코스를 정복해나갔다. 첫날 더블 보기를 범한 9번 홀(파5)에서 2~4라운드 동안 내리 버디를 잡은 것도 이소미다웠다.
첫날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6위였던 이소미는 2라운드에 공동 선두로 솟구친 뒤 3·4라운드에 단독 선두를 굳게 지켰다. 공동 2위 이정은6, 유해란에 1타 앞선 단독 선두로 나선 4라운드에서 이소미는 버디 7개와 보기 3개로 4타를 줄였다. 5·6번 홀 연속 보기 뒤 7~9번 홀 3연속 버디로 1타 차 단독 선두를 되찾은 그는 11·12번 홀 연속 버디로 일찌감치 결정타를 날렸다. 11번 홀(파4)에서 5m 버디를 잡은 데 이어 12번 홀(파4)에서는 118야드 거리의 두 번째 샷을 핀 1m에 붙였다. 캐디와 주먹을 맞부딪치며 웃어 보이는 이소미의 얼굴에서 우승 예감이 읽혔다. 17언더파로 달아난 이소미는 추격자 그룹인 이가영, 박현경, 이정은6과의 격차를 3타로 벌렸다. 이소미는 까다로운 18번 홀(파4)에서도 165야드 거리에서 볼을 핀 3.5m에 떨어뜨린 뒤 버디로 마무리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에 축하 물 세례나 꽃잎을 뿌리는 세리머니는 없었다. 동료들로부터 조용한 축하를 받은 이소미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경기 후 이소미는 “정말 사랑하는 제주에서 우승해 더 기쁘고, 올해는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해내 행복하다. 오랜만의 챔피언 조 경기라 긴장한 탓인지 초반에 보기가 여러 개 나왔지만 이내 차분하게 스스로에게 집중했더니 결과가 따라왔다”고 말했다.
이날 우승에 앞서 이소미의 시즌 최고 성적은 4월 개막전인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1타 차 단독 2위였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는 공동 4위, 지난해 롯데렌터카 대회 우승, S-OIL 챔피언십 공동 3위를 했다. 모두 제주 대회였다. 겨울 훈련을 주로 제주에서 하는 이소미는 바람 많은 환경에서 다양한 ‘기술 샷’을 연마해왔다. 바람이 비교적 약했던 이번 주는 마음 놓고 버디 잔치를 벌였다.
최경주가 나온 완도 화흥초등학교 출신으로, 최경주를 보고 골프를 시작한 이소미는 신예 시절 ‘완도 소녀’로 불렸다. 데뷔 시즌인 2019년에는 신인상 포인트 1~3위인 조아연, 임희정, 박현경에게 밀려 4위에 그쳤지만 이듬해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소미는 승부처인 16~18번 홀에서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나흘 내내 타수를 잃지 않았다. 반대로 다른 우승 후보들은 16~18번 홀에서 좌절했다. 2019년 US 여자오픈 우승 이후 3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멤버 이정은6는 18번 홀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린 끝에 더블 보기를 치면서 공동 2위에서 공동 6위(11언더파)로 미끄러졌다. 이정은6는 2017년 이 대회 연장에서도 이 홀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려 준우승했던 기억이 있다. 이가영은 16번 홀(파5) 티샷 실수로 더블 보기를 범해 12언더파 공동 3위에 만족해야 했다. 13언더파 박현경이 2위에 올랐고 김수지와 정윤지는 이가영과 함께 공동 3위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