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옌안





1934년 10월 중국 남부 장시성 루이진 해방구에 있던 홍군 8만 여 명은 국민당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에 나섰다. 장제스가 지휘하는 국민당군은 루이진 해방구 주위에 요새를 설치하고 홍군을 압박해왔다. 식량과 의약품이 떨어져 더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홍군은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오직 살길을 찾아 떠났다. 걷고 또 걸어 이듬해 10월 중국 서북부 산시성의 황토고원에 자리 잡았을 때 남은 사람은 7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중국 공산당이 370일에 걸쳐 1만 2500㎞를 걸어간 탈출 과정을 ‘대장정’이라고 부른다. 산시성 옌안은 대장정의 최종 도착지다. 마오쩌둥은 13년 동안 이 지역 토굴에서 지내면서 인재를 키우고 마르크스 이념을 발전시켜 공산혁명을 준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6세이던 1969년 이곳으로 하방(下放·중국 공산당원 등의 관료화 방지를 위해 농촌·공장 등에 보내 육체노동을 하게 하는 것)해 7년 동안 토굴 생활을 했다. 부친인 시중쉰은 중국 공산혁명의 8대 원로 중 한 명으로 국무원 부총리까지 지냈으나 문화대혁명으로 실각했다. 그의 자식들도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시 주석은 옌안에서의 하방 생활을 회상하면서 “실사구시가 무엇이고 누구를 민중이라고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사구시는 마오쩌둥이 옌안의 중앙당학교 총장을 하는 기간 교훈으로 삼아 가르치던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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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이 최근 정치국 상무위원 6명과 함께 중국 공산당의 혁명 성지인 옌안을 찾았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공산당 대회에서 3연임이 확정된 시 주석은 옌안 혁명기념관 전시를 관람하며 옌안 정풍운동을 높이 평가했다. 또 당시 국민당의 봉쇄를 언급하며 자력갱생과 고난의 분투를 강조했다. 시 주석이 마오쩌둥의 당내 1인 지배를 확고히 한 옌안 정풍운동을 거론한 것은 마오쩌둥처럼 1인 장기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산당 1당 독재를 넘어 1인 독재가 확고해질수록 기업과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억눌려 경제와 과학·문화 등이 더 움츠러들게 된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춰 ‘차이나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초격차 기술을 키워 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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