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1일 53번째 창립기념일을 맞아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하루를 보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 취임 후 첫 창립기념일임에도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을 고려해 행사를 대폭 축소했다. 이 회장도 별도의 경영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한종희(사진) 디바이스경험(DX) 부문 부회장은 이 회장이 조만간 선보일 ‘뉴삼성’ 비전을 암시하듯 임직원들에게 “삼성전자의 저력과 도전 의지를 바탕으로 또 한 번 새롭게 변신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한 부회장은 이날 경기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진짜 실력이 발휘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한계 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한 신성장 △고객 중심의 핵심 경쟁력 재정의 △지속가능경영의 적극적인 실천 △소통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 등을 주문했다. 한 부회장은 “새로운 기회 영역인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로봇·메타버스 등에서 미래 생활상을 바꿀 신사업 기회를 창출해 성장 모멘텀을 확대해 나가자”며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친환경 기술 혁신을 강화해 지속 가능한 미래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자. 선구적인 준법정신과 문화가 삼성전자의 기본 가치로 자리 잡도록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 부회장과 경계현 반도체(DS) 부문 사장 등 전문경영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회장은 동참하지 않았다. 이 회장이 창립기념일에 메시지를 낸 것은 2019년 창립 50주년 때 “도전과 기술, 상생을 통해 미래 세대에 물려줄 ‘100년 기업’을 만들자”는 내용의 영상 메시지를 발표했던 게 유일하다.
다만 이날 한 부회장의 요청 사항은 대부분 이 회장의 철학과 일치했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 부회장이 이 회장의 의중을 임직원들에게 대신 전달한 효과를 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준법정신, 지속가능경영 실천, 일하는 방식의 변화, 기술 혁신 등은 이 회장이 올 들어 수차례 반복해 강조하는 개념들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지난달 회장직 취임을 계기로 높은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 그룹 컨트롤타워 구축 등을 중심으로 한 ‘뉴삼성’ 비전을 곧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버금가는 대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달 27일 회장직 취임 직후 삼성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임직원들을 향해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당초 예정했던 사내 동호회 공연 등 내부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대신 행사에 앞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한 부회장과 경 사장은 전날 사내 게시판에도 애도 메시지를 내고 “소중한 가족과 지인을 잃은 모든 분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며 “임직원 여러분은 국가 애도 기간 희생자 추모에 함께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