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미술 다시 보기]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1848년 2월 혁명으로 프랑스에 새로운 공화정이 수립되던 시기 파리 화단에서는 사실주의 미술 사조가 태동했다. 관념적인 신고전주의 양식을 거부하고 현실 도피적인 낭만주의 미학과도 결별을 선언하며 당대의 현실을 진실하게 재현하고자 노력했던 미술 사조가 사실주의이다. 이 미술 운동을 선도했던 귀스타브 쿠르베는 정규 미술교육 제도의 도움 없이 독학으로 자신의 화풍을 만든 작가다. 화가는 자기 관점에서 자기 시대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현실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이상화하지 않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화가의 역할이라 믿었다. 회화는 실제로 존재하고 눈에 보이는 대상들로 구성되는 것이기에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는 것은 회화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쿠르베가 1850년에 제작한 ‘오르낭의 매장’은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이다. 화가의 고향 오르낭에서 벌어진 장례식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에는 실물 크기의 인물들이 40명 이상 등장한다. 그림의 주제가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가로 6미터가 넘는 대형 화폭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당대 큰 반향을 일으켰다. 1850년 파리 살롱전에서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전통적인 회화 규범을 파괴한 작품이라 비난했다. 서양화 전통에서 장례식 장면을 다룬 그림들은 대체로 종교화로 분류된다. 이러한 그림들은 신에 의한 구원과 영혼의 승천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직적인 구도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쿠르베는 이 그림에서 수평적 파노라마 구도를 사용해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장례식 장면을 구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장례식을 계기로 다양한 계층의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슬픔을 함께 나누는 화해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상실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공동체의 연대 의식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된 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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