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암호화폐 발행에 나서겠다며 가상자산 시장에 잇따라 출사표를 던졌던 국내 기업들이 관련 사업 계획을 보류하고 있다. 기대와 달리 정권 교체 이후에도 규제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데다 시장 분위기까지 얼어붙자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당초 암호화폐를 발행하려던 국내 기업들이 관련 사업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 최초로 자체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해 주목 받았던 SK스퀘어는 관련 사업 계획을 미뤘다. SK스퀘어는 앞서 2분기까지 블록체인 관련 서비스 개발과 백서 발행을 마치고, 3분기 내 암호화폐를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SK스퀘어 관계자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더라도 현재 시장 상황에서 크게 주목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적기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KG이니시스 역시 지난 3월 암호화폐 발행을 시작으로 결제, 예치·수탁 사업 등 가상자산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이었으나, 악화된 시장 상황으로 인해 계획이 지연됐다. 특히 금융당국이 같은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인 다날에서 발행한 암호화폐인 페이코인에 대해 실명계좌를 받아오라고 한 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비슷한 사업을 준비 중인 KG이니시스도 가상자산 기반 결제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규제의 문턱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KG이니시스 관계자는 “연내 발행을 목표했지만 테라-루나 사태, 페이코인 등 여러 이슈가 겹치며 발행이 연기되고 있다”며 “실생활에 연동할 수 있는 방식을 구상하고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까지도 준비해 시간이 걸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티몬 코인’을 발행하겠다고 밝힌 티몬의 경우 지난 9월 ‘큐텐’에 인수되고, 신현성 창업자가 이사회에서 물러나면서 블록체인 관련 사업이 모두 백지화됐다. 당초 티몬은 상반기 내 백서 발간과 자체 암호화폐 발행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특히 신 창업자는 테라-루나를 공동 개발했던 인물이다. 티몬 관계자는 “코인을 발행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인수된 이후에는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완전히 접은 상태”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관망 모드로 돌아선 데는 최근 암호화폐 하락장과 더불어 ‘김치코인’에 대한 투자자 신뢰도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대표 암호화폐로 꼽히는 카카오 ‘클레이튼’, 위메이드 ‘위믹스'는 최근 가격이 고점 대비 90% 이상 하락했다. 위믹스는 지난달 27일 국내 4대 원화 마켓 거래소로부터 일제히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됐다. 클레이튼은 중앙화된 운영 방식으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투자자들 사이에선 유명 대기업의 이름값을 믿고 샀는데 정작 기업 규모에 맞지 않게 가상자산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규제 리스크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원인으로 작용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여야를 막론하고 가상자산 친화적인 공약이 쏟아졌지만 테라-루나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기 때문이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대선 이후 가상자산 산업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테라-루나 이후 오히려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존 기업들이 섣불리 시장에 참여하기 힘들어졌다”며 “정부에서 전향적인 태도로 긍정적인 시그널을 주기 전까지는 기업들의 참여가 주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