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만큼 미술 시장에 대한 열기가 뜨겁지는 않다. 연준이 지속적으로 돈을 거둬들이는 상황에 미술시장도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10월 ‘런던 아트위크’ 기간의 경매 결과 분위기가 이를 말해준다. 크리스티(Christie’s)의 메인 출품작이었던 데이비드 호크니의 페인팅 ‘Early Morning, Sainte-Maxime’이 추정가의 두 배가 넘는 약 2400만 불에 낙찰됐을 뿐, 소더비(Sotheby’s)에 출품된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은 간신히 추정가를 넘겨 낙찰됐다. 줄줄이 유찰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작품 대부분이 예상 추정가를 훨씬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30대 특정 젊은 아티스트들 작품에 대한 수요는 아직 탄탄했다. 여성 아티스트의 약진이 계속되는 중이다. 블루칩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이들 작품의 추정가는 많은 입찰자들을 경매로 끌어들여 높은 낙찰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들어 경매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안나 웨이안트(Anna Weyant)를 비롯해 이지 우드(Issy Wood), 에밀리 매 스미스(Emily Mae Smith), 제나 그리본(Jenna Gribbon)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최근까지 세컨더리 마켓(2차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보여준 여성 블루칩 작가 사라 휴즈(Shara Hughes)와 로이 할로웰(Loie Hollowell)은 주춤한 추세이다. 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다. 1차 시장에서 구매하고 2차 시장으로 작품이 나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져 예술품을 단순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코 건강한 미술시장의 모습이 될 수 없다.
주목할 점은 여성 작가의 인종 다양성이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 백인 여성작가가 지배적인 분위기를 넘어 남미 출신의 마리아 베리오(Maria Berrio)와 베트남계 이민자 아티스트인 줄리엔 응우옌(Julien Nguyen)이 추정가를 몇 배씩 웃도는 기록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11월 뉴욕 경매에서는 시장에 막 진입한 새로운 여성 아티스트들의 수요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지켜보는 게 관전 포인트다.
또하나 볼거리는 막대한 개인 컬렉션의 향방이다. 크리스티는 이번 뉴욕 경매에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공동창업한 폴 앨런(Paul Allen)의 컬렉션을 메인으로 가져왔다. 156점의 전체 추정가가 무려 1억 달러에 이른다. 9, 10일 이틀간 ‘Visionary: The Paul G. Allen Collection’라는 이름의 경매가 진행될 예정이다. 폴 앨런은 2018년 작고하기 전까지 조용히 익명으로 자신의 미술품들을 박물관에 대여하며, 자신의 컬렉션 공개를 꺼렸다. 그는 르네상스 거장 산드로 보티첼리부터, 인상주의 시대의 에두아르 마네, 빈센트 반 고흐, 조르주 쇠라 등을 비롯해 근·현대미술의 재스퍼 존스, 데이비드 호크니까지 500여 년의 미술사를 포괄하는 박물관급 컬렉션을 보유했다. 그 바람에 경매 프리뷰를 보려는 대기줄이 이례적으로 길게 늘어섰다. 관람은 오후 5시까지이나 3시까지만 입장시킨다. 대단한 작품들을 꼼꼼히 보려는 사람들이 그 정도로 많다는 의미다.
폴 앨런 세일이 끝난 직후 17일부터 19일까지 기존 경매가 진행된다. 동시대미술 경매에서는 현재 폭발적 수요를 지닌 여성 아티스트 크리스티나 퀄스(Christina Quarles), 제나 그리본(Jenna Gribbon), 캐롤라인 워커(Caroline Walker), 에바 유스키에비츠(Ewa Juskiewicz), 애나 팍(Anna Park) 등이 활약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소더비는 휘트니미술관의 이사회 회장을 지냈던 데이비드 솔링거(David M. Solinger)의 컬렉션을 14일 메인 경매에 올린다. 호안 미로, 알베르토 자코메티, 파울 클레, 페르낭 레제, 장 뒤뷔페 등 다양한 근대미술품이 출품됐다. 같은 날 저녁에 진행될 예정인 ‘근대 미술품 이브닝 세일'에는 경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피에트 몬드리안의 대표작인 ‘Composition Ⅱ’(1930)이 나온다. 몬드리안이 검은색 격자무늬를 도입하고, 자신의 추상성을 적극적으로 탐구한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라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도상과 크기를 갖는 ‘Composition Ⅲ’(1929)가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5000만 불에 낙찰된 적 있다. 경매 기록을 경신 여부에 관심이 쏠려있다.
16일의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는 앤디 워홀이 1960년대에 작업한 ‘죽음과 재앙' 시리즈 중 하나인 ‘White Disaster (White Car Crash 19 Times)'(1963)이 추정가 8000만 달러에 나온다. ‘Car Crash’ 연작 중 가장 큰 작품이다. 디아(Dia) 파운데이션의 설립자 하이너 프리드리히(Heiner Friedrich)와 유명 아트 딜러 토마스 암만(Thomas Ammann)이 소장했던 화려한 이력을 가지진 만큼 주목을 끈다.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 윌렘 드 쿠닝의 1960,70,80년대의 시기별 작품이 하나씩 출품된 점도 이색적이다.
같은 날 젊은 아티스트를 주목하는 ‘The Now 이브닝 세일’이 열린다. 새롭게 시장에서 부상중인 줄리엔 응우옌(Julien Nguyen), 루시 불(Lucy Bull), 마리아 베리오(Maria Berrio)를 비롯해 지속적으로 경매에서 보이고 있는 안나 웨이언트(Anna Weyant)의 페인팅들이 출품됐다.
필립스(Phillips) 옥션은 15일 ‘20세기 &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을 시작으로 16일까지 경매를 연다. 현재 런던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 흑인 여성 아티스트 에이미 쉐랄드(Amy Sherald)의 작품 2점과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회고전이 한창인 알렉스 카츠(Alex Katz)의 작품들이 다수 출품됐다. 젊은 여성 작가로는, 경매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의 루시 불(Lucy Bull) 작품 ‘Untitled (Green Dot)’과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일본 여성 작가 우라라 이마이(Ulala Imai)의 정물화 ‘Fruits’가 얼마나 많은 입찰자들을 불러올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