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가 소현세자의 죽음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배경에 현대적인 스릴러 장르가 더했다. 역사가 스포일러기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상되지만,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호흡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색다른 묘미다. 연극을 방불케 하는 선 굵은 연기를 펼친 유해진과 맹인 연기에 처음 도전한 류준열의 호흡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올빼미'(감독 안태진)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안태진 감독, 배우 유해진, 류준열이 참석해 작품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올빼미'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다. 모든 사건이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펼쳐지며 극한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본 류준열은 "어떻게 찍었는지 한 번씩 돌아보는 순간이 있는데, '올빼미'는 기억이 잘 안 나더라. 영화만 파다 보니 그런 것 같다"며 "순간의 집중이 모여서 좋은 영화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해진은 "볼 때마다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 같다. 고생한 만큼 좋게 다가갔으면 좋겠더라"이라며 "고생했던 만큼은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안 감독은 "시작은 주맹증이었다. '주맹증에 걸린 맹인이 궁에 들어가서 무언갈 목격한다'는 게 모티브였다"며 "어떤 시대 배경을 가져올까 고민하다가 조선왕조실록에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것 같다'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묘사한 기록이 있다. 실록 중 가장 많은 의심을 담은 문구가 아닌가 싶어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밝혔다.
작품은 소현세자 사망을 다루며 정통적인 사극을 가져오면서 현대적인 스릴러 기법을 자연스럽게 녹였다. 안 감독은 "'올빼미'는 두 가지 커다란 이야기 축을 갖고 있다. 하나는 목격자 스릴러인데, 주인공이 우연히 사건을 목격하고 더 큰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라며 "다른 한 축은 팩션(faction)이라고 부르는, 실제 역사 인물과 배경에 상상을 더하는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두 가지 축 사이에 균형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다 보니 왜곡 논란에도 휩싸일 우려도 있다. 안 감독은 큰 맥락은 헤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그는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를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인조가 소현세자 가족을 대단히 미워했다는 맥락은 헤치지 않으려고 했다"며 "그 선에서 나머지 디테일은 상상에 의해 채워나갔다고 보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목에 대해서는 "'올빼미'는 주어진 제목이었는데, 참 좋더라. 목격 스릴러다 무언가를 본다는 게 중요한 상징"이라며 "올빼미와 참 잘 어울리는 의미"라고 말했다. 목격의 상징은 주요 메시지로도 이어진다. 안 감독은 "큰 진실이든 작은 진실이든 마주하게 됐을 때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유해진과 류준열은 이번 작품을 통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오랜 시간 옆에 있다 보니 느끼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류준열은 "유해진이 왕 역할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뻤다. 세 번째에 기쁨과 안도도 있었다"며 "세 번째라고 똑같은 건 아니다. 전작과 분명 다른 현장이었고, 특별한 대화 없이도 자연스럽게 진행됐다"고 뿌듯함을 표했다. 유해진은 "류준열은 점점 잘 서가고 있는 것 같다. 기둥이 굵어진 느낌"이라고 칭찬했다.
유해진은 아들의 죽음 후 불안감에 광기로 폭주하는 인조 역을 맡았다. 그는 "굵은 연기, 색이 짙은 캐릭터를 맡을 때는 연극할 때를 많이 떠올린다. 무대라고 생각하고 극장에서 했던 연기를 했다"며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맞췄는데, 인조는 욕망에 눈이 먼 인물"이라고 말했다.
유해진은 광기로 폭주하는 인조의 얼굴을 미세한 근육까지 사용하며 세세하게 표현했다. 이에 대해 그는 "표현에 있어서 표정을 따로 준비하진 않았다. 다만 최대한 이 인물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라며 "그러려면 신마다 젖어 있어야 됐다. 자연스럽게 만들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류준열은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를 연기한다. 그는 "주맹증을 앓고 있는 분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삶을 엿보려고 노력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랑 크게 다를 바 없는 부분이 많아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눈빛도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더라. 그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했다"고 했다.
주맹증을 연기하며 힘든 점도 있었다고. 류준열은 "경수가 평민으로 궁에 들어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인물이 보고도 못 본 척해야 되는 순간이 우리 삶과 닮아 있다. 이것을 인간의 핸디캡으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며 "안 보이는 와중에도 어딘가를 '도대체 어딜 보고 있는 거야?'라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들도 삶의 이상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중의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다"고 짚었다. 오는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