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함기용(사진) 대한육상연맹 고문이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故) 함기용 고문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손기정 선생,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정상에 오른 고(故) 서윤복 선생의 뒤를 이어 한국 마라톤을 빛낸 영웅이다.
고인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으로 인해 선수 생활은 무척 짧았다. 1930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함기용 고문은 1946년 손기정 선생이 주도한 '마라톤 꿈나무 발굴단'에 뽑혀 전문 마라톤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예비 선수'로 뽑혔지만 레이스를 펼치지 않았던 함 고문은 1950년 4월 19일(현지시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32분39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당시 대회에서 고(故) 송길윤 선생이 2시간35분58초로 2위, 고(故) 최윤칠 선생이 2시간39분45초로 3위를 기록, 한국 마라톤의 위상을 드높였다.
생전 함 고문은 "손기정 선생님은 광복 전, 서윤복 선배는 미군정 시절에 우승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메이저대회 마라톤에서 우승한 건 내가 처음"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마라톤 입문 4년만에 단 네 번째 풀 코스 완주에 보스턴 마라톤 우승을 차지해 주변을 놀라게했다.
그러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던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정상적으로 마라톤 훈련을 하지 못한 함 고문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1952년 헬싱키올림픽 출전을 준비했지만, 부상으로 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못한 채 곧바로 은퇴를 결정했다. 이후 은행원, 공무원 등으로 일하던 함 고문은 1989년 대한육상연맹 전무이사로 '육상 행정가'로 새 출발했고, 이후에도 연맹 고문으로 한국 육상과 인연을 이어갔다. 고인의 빈소는 분당차병원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7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