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지닌 인간에 대한 탐구이고 병원 시스템과 관료주의를 고발하는 영화이기도 하죠”
배우 에디 레드메인(40)은 그 어떤 역할도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에서 29명의 환자를 약물 투여로 살해한 간호사 찰리도 그랬다. 관객 소통 배우로 불리는 그는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적 진실에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능하다.
지난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 그는 “토비어스 린드홈 감독은 나와 에이미(제시카 차스테인 분)에게 한 달 간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리허설을 고집했다”며 “크리스티 윌슨-케언즈의 대본은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훌륭한 ‘문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문서’라는 어감이 꽤나 마음에 든다는 투로 대화를 이어가며 “이 대본이 ‘바이블’ 역할을 했고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했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찰스 그레버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화다. 1987년부터 2003년까지 뉴저지와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10개의 병원에서 근무하며 40명에 달하는 환자를 약물 투여해 연쇄 살인을 자행한 미국의 간호사 찰스 컬런의 실화가 모티브다. 가석방이 없는 징역 39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찰스 컬런은 환자들을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살인을 감행했다고 자백했다. 그가 시인하지 않은 범죄들까지 합하면 400여명을 죽였을 거라는 추정도 있다.
레드메인이기에 사려 깊고 다정한 동료 간호사가 ‘아무도 막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을 멈추지 않았던 사이코패스 간호사라는 반전에 설득력이 부여됐다. 그는 “살인자이고 감옥에 있어야 마땅한 캐릭터에게도 공감이 필요했다. 찰리의 살인 동기를 확실히 몰랐기에 숨겨진 단서를 붙잡고 연쇄 살인마가 된 이유를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성장 배경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7살 때 누나의 한 남자친구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그를 죽이려 했고 자신도 자살 기도를 했다. 15살 때에는 그와 가장 가까웠던 어머니가 차 사고로 죽었는데 가장 먼저 병원에 도착한 그의 눈에 병원 관계자들의 태도는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겨우 찾은 어머니의 시신은 참기 힘든 모습이었다고 등이다. 레드메인은 “정신과 병력이 있는데도 취약층을 돌보는 직업이 허락되고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병원에서 간호사 훈련을 받았음을 감안할 때 그가 연쇄 살인마가 된 동기나 이유를 하나로 국한하기 어려웠다. 그를 신고한 에이미는 찰리에게 해리성 장애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이유도 살인의 정당성을 설명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에디 레드메인은 연기폭이 매우 넓고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대니쉬걸’(2015)의 트렌스젠더 에이나르 베게너 릴리 엘베 역으로 다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애론 소킨스의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2020)에서는 톰 헤이든 역을 맡아 최고의 앙상블 연기를 보였다. 노래 실력도 뛰어나 영국 뮤지컬 ‘카바레’의 리바이벌에서 킷 캣 클럽의 MC로 출연, 생애 세 번째로 2022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수상했다.
에디 레드메인과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미국 병원 시스템과 의료보험 제도, 관료주의와 병원 관리의 치부 등 의료계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 정해진 근무 일수를 채워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심장질환을 숨기고 일하는 싱글맘 간호사 에이미, 약물 투여로 환자를 살해하는 찰리의 범행에 대한 병원의 묵인 등은 단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심지어 고통을 끝내기 위해 목숨을 끊게 한다는 ‘조력 존엄사’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하은선 미주한국일보 부국장, HFPA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