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마음의 병'도 고쳐줍니다…치유의 공간이 된 갤러리

[K메디치를 만나다] 푸른문화재단 '아르스 롱가' 전시

소화기내과·호흡기내과 안내판

하얀색 진료 가운 입은 큐레이터

갤러리, 병원처럼 꾸며 심신 힐링

구혜원 이사장 공예 후원 팔 걷어

서울 용산구 갤러리SP의 푸른문화재단 기획전 '아르스 롱가' 전시장 입구. 기획의도에 맞춰 병원처럼 꾸며졌다. /조상인기자서울 용산구 갤러리SP의 푸른문화재단 기획전 '아르스 롱가' 전시장 입구. 기획의도에 맞춰 병원처럼 꾸며졌다. /조상인기자




‘아르스 롱가 병원(Ars Longa Hospital) ’이라고 이름이 붙은 전시장은 영락없는 병원이다. 하얀색 진료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이들은 큐레이터와 작가들이다. 병원 이름은 고대 그리스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에서 따 왔다. 치료기술인 ‘의술’이 예술(art)로 오역됐지만 예술에도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는 취지로 25명 작가의 150여 작품을 모은 푸른문화재단의 전시 ‘아르스 롱가’가 서울 용산구 갤러리SP에서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소화기내과’라는 안내판이 붙은 첫 전시장에서 만난 이재익의 작품은 복숭아빛 색상과 유기적인 형태가 꼭 ‘위장’처럼 보인다. 작가는 재활용 소재인 가죽을 자르고 정교하게 붙여 원초적인 생명체의 모습을 만들었다. 원래 꿈틀대는 생명력을 담은 작업으로 유명하다. 가벼운 소재라 장신구로 착용하기에도 손색없다.

이재익 '유기체51'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이재익 '유기체51'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


전시 기획자이자 현장 도슨트로 나선 구혜원(오른쪽 두번쨰)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이 민준석, 전지현 작가 등과 함께 '아르스 롱가'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조상인기자전시 기획자이자 현장 도슨트로 나선 구혜원(오른쪽 두번쨰)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이 민준석, 전지현 작가 등과 함께 '아르스 롱가' 전시를 돌아보고 있다. /조상인기자


맞은편 호흡기내과의 최윤정 작가는 둥글게 부풀어 오른 호흡의 순간을 보여준다. 특수플라스틱과 다듬은 은을 이용해 반투명한 느낌의 허파꽈리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피부과의 이선용 작가는 인간 피부와 매우 흡사한 실리콘을 재료로 목걸이와 오브제를 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단절됐던 관계성의 회복, 특히 촉각성의 재발견을 이야기 한다. 섬세한 작업 과정에서 작가의 지문, 손가락 주름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겼다. 내분비대사내과와 뇌신경과를 맡은 성코코 작가는 희로애락을 좌우하는 여러가지 호르몬을 각각의 캐릭터 브로치를 선보였다. 달콤함으로 유혹하는 인슐린, 뇌의 한복판을 차지한 행복 호르몬 도파민, 흥분한 기색 역력한 아드레날린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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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용 '피부를 입다'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이선용 '피부를 입다'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


최윤정 '호흡시리즈_균형잡힌 #002'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최윤정 '호흡시리즈_균형잡힌 #002'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


아래층 정신의학 연구소에서는 김아랑 작가의 작품들이 우리가 잃어버린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작품에 등장하는 뱀이 감긴 지팡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앰블럼에도 등장하는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뱀 지팡이다. 섬유예술가 오화진이 정형외과를 맡았다. 2개층을 가로지르는 5m 높이의 설치작품 ‘대신에’는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이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는지를 이야기 한다. 신체적 불편을 보완해주는 목발과 의수(義手)지만, 꾸미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다. 고통과 두려움의 공간인 병원의 용품들을 은·동 미니어처로 제작한 전지현 작가의 ‘마음을 치료하는 도구’ 연작, 쓰디쓴 약을 탐스런 보석처럼 다듬어 브로치로 만든 김유정의 ‘알약 시리즈’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지현 작가의 브로치 작업인 '마음을 치료하는 도구'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전지현 작가의 브로치 작업인 '마음을 치료하는 도구'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


김유정 '알약 시리즈'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김유정 '알약 시리즈' /사진제공=푸른문화재단


구혜원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이 민준석 작가의 '서큘레이션' 작업을 직접 돌리며 시연, 설명하고 있다. /조상인기자구혜원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이 민준석 작가의 '서큘레이션' 작업을 직접 돌리며 시연, 설명하고 있다. /조상인기자


푸른문화재단은 ‘아트 쥬얼리’에 집중한 공예작가 지원사업으로 국내 첫손에 꼽힌다. 2018년부터 매년 공예 기획전을 진행해 왔는데, 푸른저축은행(007330) 회장이기도 한 구혜원 이사장이 직접 기획자이자 큐레이터로 나선다.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딸이자,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의 동생인 구 이사장은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30년 경력의 컬렉터로서 미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번 전시가 개막한 11일 의사가운을 입고 현장 도슨트로 나선 구 이사장은 귀걸이 작업으로 유명한 이미리 작가가 성황당을 떠올리게 하는 설치작품을 선보인 것에 대해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 우리는 낫게 해달라고 물 떠놓고 빌고, 성황당에서 비는 게 고작이었는데, 기복신앙의 바람과 치유가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작가와 설치작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혈액내과’에 전시된 민준석 작가의 오브제를 손으로 돌리며 “투명한 관 안에 글리세린을 널은 것인데, 붉은색 합성루비가 적혈구를 연상시키며 우리 몸 안의 흐름을 생각하게 한다”고 소개했다.

매년 독창적 주제로 풀어내는 푸른문화재단의 기획전은 2020년 공예를 추상으로 해석한 전시와 함께 지난해 전통과 현대 공예를 접목한 ‘연리지’가 잇따라 크게 호평받았다. 지난해 ‘뮌헨 쥬얼리 위크’ 참가를 시작으로 해외 전시를 통해서도 우리 공예 알리기에 주력하는 중이다.


글·사진=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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