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더 선명해진 尹 외교전략…한중·한러 함수는 더 복잡해졌다

[한미일 공동성명 의미는 ]

北 핵·미사일 대응 확장억제 강화

한미일 공조 재확인…순방 큰 성과

한일 지소미아 더 활성화할 가능성

3국 협력이 대륙국가 배제는 아냐

"韓 노선정리로 입지 확대" 평가도





미중 패권 전장의 한가운데인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서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의 윤곽이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현지 시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태 전략과 관련해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자유로운 인도태평양을 지향한다. 역내 자유, 인권, 법치와 같은 핵심 가치가 존중돼야 하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민주주의 전통과 가치, 이에 기반을 둔 제도와 질서를 내세운 이른바 ‘바이든 독트린’에 성큼 다가간 셈이다.



덕분에 처음으로 한미일 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포괄적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대북 확장 억제를 강화하는 데 힘을 모았다. 한국이 불안한 국제 정세 속 ‘가치외교’를 분명히 해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환호의 뒤편에 중국과의 관계는 숙제로 남게 됐다. 인태 전략 자체가 중국 견제를 공간화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한중 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미중 사이 독자 외교를 추진하는 아세안과의 연결 고리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우려와 기대의 교차 속에 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섬세한 대중·대아세안 전략이 첨가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①대북 억제력 높인 외교력=13일(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은 사상 최초로 공동성명을 내놨다. 무엇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확장 억제 강화를 제일 앞 단에 뒀다. 북한의 무력 도발에 공조하겠다는 뜻은 3국이 수차례 밝혀왔지만 정상 간 공동성명으로 선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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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은 북한 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2014년 체결한 한미일 정보공유협정(TISA)을 보다 확대해나가자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파기 위기를 겪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더욱 활성화할 가능성도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14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한미일 정상이 북핵 문제에 대해 일관된 의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전달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 성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북핵 문제를 고리로 한미일 3각 공조가 강화될수록 한국과 일본의 협력 수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과거사 갈등이 첨예한 한일 간 신뢰 관계를 회복하기도 전에 군사 협력 범위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 원장은 이날 라디오(tbs)에 출연해 “한일 협력이 구렁이 담 넘듯 모든 이슈에서 확대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일 군사 협력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왕선택 한평정책연구소 글로벌외교센터장은 “한일 간 군사 협력이 기술적으로 한국에 필요한 부분도 있다”면서 “한일이 수집하는 정보 방향이 달라 (교차 분석의)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②신냉전에 빨려 들어간 한반도=다만 한미일 3국 공조 강화에 따른 한중 관계 악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신냉전’으로 불리는 국제 정세 속에 정부가 ‘중국 견제’ 의미를 담은 인태 전략을 채택해 ‘악수’를 뒀다는 지적도 있다. 왕 센터장은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미국 편으로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한다’는 내용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할 수 있다. 중국과 센카쿠열도를 놓고 긴장 구도에 있는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양 국가이기도 하면서 대륙 국가이기도 한 한국은 미중 전략 경쟁에 참전할 필요가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상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일 주도의 국제 질서 재편에 적극 편승할 경우 사실상 국경을 맞댄 중국과의 관계에서 자충수를 두는 것과 다름없다. 왕 센터장은 “우리는 중국과 적대하는 구도에서 살 수 없다”며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동반이라는 두 바퀴를 같이 굴려야 하는데 지금은 동맹만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③신남방 경제 협력 시험대=중국뿐 아니라 아세안이 한국에 경계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세안 역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사이에서 고심하며 독자적인 외교를 꾀하고 있어서다. 같은 맥락에서 아세안과의 경제 협력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이 성과를 봤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한미일 협력 강화가 곧 중국·러시아 등 대륙 국가를 배제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한국으로서는 오히려 노선을 확실히 정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키우고 아세안과의 독자적 전략 관계를 추구하는 등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설명이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일본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협력해 자리매김해야 외교적 지평이 열린다”며 “중국과 러시아 눈치를 봐서 중간 지대에 서는 것은 오히려 외교적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센터장도 “한국 입장을 꼭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앞으로 아세안과의 협력 고리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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