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마트에서 모르는 할머니를 만나 잔소리를 들은 후 김치를 먹으며 1년 만에 50㎏을 감량한 미국인 여성이 이젠 ‘한식 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카메룬계 미국인인 아프리카 윤(44)은 미주한인위원회(CKA)로부터 ‘임브레이스 유니티 상(Embrace Unity Award)’을 받았다. 한식과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그의 활동이 민족과 인종 간 경계를 넘어 미국 사회에 기여하고 한인의 위상을 높였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문화에 대한 윤의 사랑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의 본명은 수잔 엥고로, 카메룬에서 태어나 유엔 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와서 여섯 살이던 1984년 유엔총회에서 첫 연설을 했다. 열두 살엔 ‘에이즈에 대한 아프리카의 행동’이라는 단체를 공동 설립했고, 10대 시절 이탈리아 '골든 그랄 어워드'에서 인도주의상을 받았다. 뉴욕대 티시예술대학을 졸업한 후엔 본격적으로 미디어 사회 활동가로 나섰다. 그러나 윤은 활동가로 일하면서 스트레스성 폭식을 반복해 5년 만에 54㎏가 늘어난 고도 비만이 됐다.
윤에 따르면 15년 전 그가 뉴저지의 한인 마트에 있는 빵집에서 버터크림 빵을 시식한 뒤 여섯 봉지를 사려고 했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던 한인 할머니가 “넌 너무 뚱뚱하다”면서 윤의 빵을 빼앗아 빵집 주인에게 돌려줬던 것이다. 이에 윤이 “저는 뭘 먹으라는 건가요”라며 묻자 할머니는 “한국 음식, 한식이 최고”라고 답했다.
윤과 할머니는 그 후 일요일마다 한인 마트인 H 마트에 들러 한식에 필요한 장을 봤다. 1년 후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지기 전까지 장보기는 계속됐다.
윤은 할머니의 조언을 따라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등을 먹으며 채소 반찬 중심으로 식단을 바꾸고 매일 꾸준히 운동했다. 114㎏이던 몸무게는 첫 달에 13㎏이 빠졌고, 1년 뒤 50㎏이 빠졌다.
그는 체중을 감량한 후 한국계 미국인 남자와 결혼하고 이름을 아프리카 윤으로 바꿨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65∼68㎏의 체중을 유지한다.
할머니와의 만남 덕분에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윤은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할머니가 한인이라는 것만 알 뿐 나이와 사는 곳, 연락처는 모른다.
그는 "쌍둥이를 낳고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았을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그때도 한식과 함께 한 덕분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윤은 김치가 ‘슈퍼푸드’라며 김치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는 김치는 슈퍼푸드로 통한다.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고 살도 빠질 수 있다고 알려졌다"고 했다. 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도 김치와 미역국이다. 김치 중엔 배추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했다.
특히 윤은 시어머니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운 뒤로는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윤은 한식과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기업 ‘블랙유니콘’을 설립했고, 온라인 커뮤니티 '코리안 쿠킹 프렌즈'를 운영하며 한식을 주제로 사람들과 소통한다.
지난해 10월엔 주미한국대사관과 한식진흥원 등이 주최한 'K푸드 비디오 콘테스트'에서 김치를 주제로 한 영상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한복 홍보 캠페인을 진행했고, 한국인 입양아 심리 치료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한식 및 한국 문화에 관한 경험담을 비롯해 우여곡절이 담긴 삶을 풀어낸 첫 책 '더 코리안(The Korean)'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됐고, 국내에서는 최근 '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