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중간 지주사로 SK하이닉스 등을 거느린 SK스퀘어가 11번가·티맵·원스토어 등 주요 자회사의 지분 매각을 일제히 추진하는 것은 최근 기업을 둘러싼 복합적 위기 상황에 대응해 최태원 SK 회장이 주문해온 ‘파이낸셜 스토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의 관심이 높은 핵심 자회사의 지분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신규 투자 유치로 자회사 사업은 강화하는 한편 경제위기에 찾아오는 신규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포석이다. 넘어야 할 산은 지분을 팔 자회사의 기업가치를 놓고 사모펀드(PEF) 등 신규 투자자와 적지 않은 이견을 해소해야 하는 점이다.
SK스퀘어 등 SK의 주요 계열사는 ‘자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라’는 최 회장의 경영 방침에 따라 사모펀드 등 외부 투자가를 적극 유치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리 상승에 증시가 침체돼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금 회수가 힘들어지자 연기금이나 사모펀드 등 재무적투자가(FI)의 불만이 높아졌다. SK스퀘어는 신규 투자가를 확보해 기존 투자가의 자금을 돌려줘야 주요 자회사들이 순항할 수 있는 처지다.
우선 급한 자회사가 11번가다. 11번가는 2019년 사모펀드 운용사인 H&Q코리아와 H&Q의 출자자인 국민연금·새마을금고가 펀드를 추가로 조성해 총 5000억 원(18.2%)을 투자했다. 당시 맺은 투자 조건에 따라 11번가는 2023년 9월 30일까지 상장을 마쳐야 한다. 기한 내 상장에 실패하면 8%의 수익을 붙여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등이 직접 투자하고 있어 만기 연장은 어렵고 통상 만기 3개월 전에는 투자 회수 작업이 끝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스토어 역시 SKS PE와 키움 PE가 공동으로 1000억 원을 투자해 18.0%의 지분을 보유 중이며 상반기 상장을 추진했다 불발된 바 있다. 네이버와 KT 등도 전략적 투자가로 주요 주주다. 티맵모빌리티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와 어펄마캐피탈이 지난해 4000억 원(25.6%)을 투자했고 SV인베스트먼트도 투자 기업을 티맵모빌리티에 매각하면서 현금 대신 지분을 받았다. KB국민은행도 8월 2000억 원(8.3%)를 투자했다.
SK스퀘어는 이들 자회사의 지분 매각을 원하는 기존 투자가들의 수요를 충족하면서 국내외 사모펀드 등 신규 외부 투자가를 확보하려면 자체 보유 지분의 매각도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SK스퀘어 측은 자회사 보유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면서 향후 추가 투자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전문가는 “SK스퀘어가 자회사 지분 매각을 통한 지분율 희석도 상당 부분 감내한다는 계획”이라며 “향후 경영 비전이 맞고 기업가치 평가도 적절하면 경영권 지분까지도 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스퀘어는 투자 전문 기업으로 산하 자회사 등이 40개에 달하고 올해만 8곳을 신규로 포함시켰다. 인터넷 포털과 암호화폐, 양자 정보통신 등 다양한 신사업 기회를 해외에서 찾고 있는 SK스퀘어는 적지 않은 투자금이 필요한데 재무 여건이 녹록지만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SK가 재계 2위로 올라서면서 몸집을 크게 키워 차입금 등 부채도 많아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SK스퀘어가 위기를 극복하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성공적으로 작성하려면 자회사 가치 등 투자 조건을 놓고 신규 투자가와 쉽지 않은 협상을 타결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티맵모빌리티는 최근 투자에서 2조 20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어 지분 매각 시 이보다 낮은 기업가치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원스토어와 11번가도 각각 1조 원, 2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