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는 배우 류준열에게 도전이었다. 처음으로 맹인 연기를 했고, 침술까지 배웠다. 한마디로 기술적인 부분과 감정적인 부분이 모두 충족돼야 하는 인물을 연기한 거다. 그 안에는 수많은 류준열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올빼미'(감독 안태진)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가 소현세자(김성철)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다. 뛰어난 침술 실력을 인정받은 경수는 동생을 살리고 내의원에서 버티기 위해 주맹증(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에서보다 떨어지는 증상)이라는 사실을 함구한다. 소현세자를 치료하던 중 주맹증이 있다는 것을 들키게 되지만, 오히려 그의 신임을 얻어 왕(유해진)에게 침을 놓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의 모습을 목격하고 더 큰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경수는 핸디캡을 갖고 있는 캐릭터로 상징적인 인물이에요. 궁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궁 밖에 살던 평민이 궁 안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한마디로 작고 힘없는 사람이 진실을 밝혀야 된다는 이야기 구조예요. 오락 영화지만, 이야깃거리로 짚고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류준열은 주맹증을 지닌 경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 주맹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관객들이 봤을 때 '어떻게 앞이 보였다가 바로 안 보여? 말도 안 돼, 가짜야'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거였다.
"관객들이 원하는 건 영화 안에서 캐릭터가 얼마냐 말이 되느냐예요. 다들 제가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안 보인 상태에서 연기할 수는 없는 거고요. 그런 부분만 낯설게 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이 마음을 갖고 주맹증을 앓고 계시는 분들을 만났는데, 거기서 얻었던 힌트를 얻어서 캐릭터에 녹였죠."
최대한 실제 주맹증에 맞게 표현하려고 했지만, 영화적 허용도 어느 정도 있었다. 낮에 전혀 보이지 않다가 밤에 약초를 완벽하게 잘라 분류해 놓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류준열은 코미디로 접근해 풀어가려고 했으며 이때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필요했다고 말했다.
"제 먼 친척 중 맹인이 있어요. 그분을 보면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그 너머의 무언갈 보고 있는 것 같았죠. 그들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감사하다고 여기며 살기에 철학적 깨달음이 있고, 그게 맹인의 눈으로 표현돼야 된다 싶었어요. 첫 촬영 때 준비한 맹인 연기를 가져갔는데, 다행히 좋다고 해주셔서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주맹증을 앓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의 내실을 다졌다면, 동공을 조절하는 건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총 쏘는 연기를 하기 위해 눈 깜빡이지 않는 훈련을 받은 류준열. 그때의 경험을 바탕 삼아 차근차근 연습하기 시작했다.
"보일 때보다 안 보일 때 연기가 중요했어요. 사실 눈을 감는 게 확실한데, 전개 때문에 눈을 뜨고 표현해야 됐죠. 고민하다가 시선을 빼서 명확히 어딘가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이건 제가 모델에게서 가져온 느낌이에요. 평소 패션쇼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톱 모델들의 눈빛을 보면 명확하게 어딘가를 본 다기 보다 약간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배우 기초 연기 수업을 들으면 오감 훈련을 해요. 제가 예전에 초등학생에게 연극, 뮤지컬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 오감 발달 훈련이 있었고요. 맹인이 소리에 민감한데, 그런 걸 표현할 때 그 경험이 많이 도움 됐어요. "
통상적으로 작품 속 배우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연기한다. 그러나 '올빼미'는 맹인의 특성상 시선을 맞추지 않는 장면이 많았다. 또 경수가 왕의 등에 침을 놓으면서 대화하는 장면도 시선을 맞추지 않는 대표적 장면이다. 류준열은 해당 장면이 상징적이라고 표현했다.
"경수는 평민이니 왕족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할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왕 뒤에서 이야기 한다는 게 상징적이었어요. 누군가에게 뒤를 보이는 건 약점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자기 속을 다 보여준다는 거죠. 왕이 경수에게 등을 보여주는 건 그것조차 불편하지 않는 절대 권력이라는 걸 의미해요. 그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경수의 모습이 많은 걸 담고 있죠."
"배우와 배우가 눈을 보지 않고 대화한다는 건 또 다른 연기의 시작이에요. 유해진 선배와 이번이 3번째 작품인데, 마치 처음 호흡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정도로 새로운 스타일의 연기였어요. 제가 작품을 촬영하면서 놀라운 순간이 2~3개만 있어도 기분이 좋은 편인데, 그때가 놀라운 순간 중 하나였어요."
경수의 또 다른 키워드는 침술사다. 그는 뛰어난 침술 실력을 인정받아 신분을 뛰어넘고 왕에게까지 시침을 행한다. 류준열은 직접 침술을 배우면서 세심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대역이 침을 놓은 장면도 있지만, 실제로 류준열이 침을 놓는 게 많았다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의사 모임이 있어요. 영화를 즐겨 보고 좋아하는 분들인데, 영화 현장에 오셔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저도 최무성 선배와 침 놓는 훈련을 받았어요. 침 종류가 정말 많은데, 그것부터 시작해서 두루마리 휴지에 놓는 연습을 했죠. 휴지가 빽빽해질 정도였습니다. 촬영할 때는 살에 붙여놓고 안전하게 침을 놨고요."
경수는 정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최고 권력에 도전하는 건 진실을 밝히고 싶은 신념에서 비롯된 거다. 경수는 왜 이렇게까지, 무모한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대항하나. 류준열은 소현세자와 원손에게 느낀 감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수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는데, 주인이 고기를 조금 덜고 주잖아요. 그럴 때도 별말 하지 않는 사람이었죠. 이미 험난한 세상, 동생을 건사하는 것도 힘드니까요. 그러던 중 소현세자가 따뜻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고, 원손에게는 안타까운 감정을 느껴요.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 결국 같은 사람이란 걸 느끼고 연민을 느낀 거죠."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호평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류준열은 호평이 담긴 리뷰를 찾아보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완성되고 보니 '올빼미'를 촬영한 순간이 쭉 떠올라요. 기존 작품과 다르게 묵직한 분위기에서 촬영했는데, 배운 점도 많았죠. 특히 유해진 선배가 해준 좋은 얘기들이 겹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그만큼 저에게 감동이 큰 작품으로 남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