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사상초유 '野예산' 임박…"尹, 남의 가계부로 살림할 판"

■與 핵심사업 예산 줄줄이 삭감

취임 8개월은 文정권 예산철학 반영

내년도 '야당 예산안' 통과 가능성

"정부·與, 민주당에 얹혀가는 기형"

증액 못 하는 야당 단독 예산 심사

與 예비비 편성·추경 요청 불가피

총선예산엔 공감…막판 합의 전망도

28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무조정실 등 정무위 소관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28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무조정실 등 정무위 소관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예산안 통과를 전제로 한 국정조사가 시작된 상황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예산안 단독 처리까지 예고하면서 정국 구도를 민주당 우위에 놓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힘을 쓰지 못했던 상황을 단번에 역전시킨 셈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주도권을 빼앗기면 윤석열 정부 첫 예산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이 녹아든 첫 예산이 야당 예산안으로 대체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 가계부’로 임기의 3분의 1을 보내야 하는 초유의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野 예산으로 尹 정부 국정 운영=윤석열 정부는 임기 초반 8개월을 문재인 정부 예산으로 운영해야 했다. 3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5월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예산안으로 살림살이를 꾸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120개 국정과제를 반영해 법인세 인하 등의 세제개편안을 포함한 639조 원의 첫 예산안을 마련했지만 높은 여소야대의 벽을 실감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장 “국민의힘이 예산 파업을 하고 있다(박홍근 원내대표)”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29일 “민주당 단독이라도 예산 심사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부터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 장관 해임건의안과 예산안을 연계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169석의 의석수 앞에 박 원내대표의 공언대로 민주당 예산안의 단독 처리가 불가능하지 않다. 민주당이 12월 2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정부 예산안 원안을 부결시키고 민주당이 단독으로 마련한 수정안을 올려 의결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정부는 초기 20개월, 즉 임기의 3분의 1을 민주당이 짜 놓은 살림살이에 맞춰 국정을 계속 운영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민주당 가계부로 (임기) 3분의 1을 얹혀가는 것은 기형적인 모습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이라며 “결국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이 좌초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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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이재명(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이재명표 예산도 포기하나=헌법에 의해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할 수 있지만 정부 동의 없이 지출 예산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각 상임위와 예결위에서 감액 심사를 해도 증액 관련 논의는 정부와 함께해야 한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예산안을 다루더라도 감액 심사만 가능하고 증액 심사는 불가능하다.

앞서 민주당은 예산 심사를 앞두고 초부자 감세에 반대하면서 대통령실 등 권력기관 예산을 대폭 감액하겠다는 심사 방향을 세웠다. 세부적으로 △경찰국 등 권력기관 예산 △대통령실 이전 관련 예산 △공공분양주택 등 사업 설계가 부실한 예산 △불요불급한 홍보 예산 △기후위기 역행 사업 예산 △집행이 불가능한 예산 등을 감액 대상으로 꼽았다. 감액 규모만 5조 원이 넘는다. 감액된 해당 예산안만 단독 통과시키면 된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재명표’ 예산으로 기초연금 1조 600억 원, 지역화폐 예산 7000억 원 등 증액 예산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꼼수' 법안 처리까지 고려하고 있다. 기초연금법의 경우 시행일을 내년 중으로 명시한 뒤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식이다. 증액안을 야당 예산안에 반영할 수는 없지만 이재명표 예산이 필요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우회 전략이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결국 예비비 편성이나 추경 요청 등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라살림도 정쟁 굴레=전문가들은 국가의 나라살림이 정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에 대해 “안 좋은 선례”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거대 야당이 단독 수정안 처리 카드를 꺼내 들어 새로운 뇌관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정부 여당도 ‘준예산’ 가능성을 운운하며 예산안을 볼모로 한 정쟁을 자초했다.

다만 이번 예산안이 2024년 열리는 총선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산인 만큼 결국에는 여야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예산 심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돼야 ‘쪽지 예산’이라 불리는 지역 예산 끼워 넣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예산안 단독 통과는 야당에도 부담이지만 여당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분석했다.


정상훈 기자·이승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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