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북소리가 귓전을 파고드는 가운데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얼굴에도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낯설지만 웅장한 느낌을 주는 필리핀 전통음악이 마치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필리핀의 기대감을 대변하는 듯했다.
30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 1회 필리핀 블록체인 위크(PBW) 현장에선 FTX 사태 여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캐시(GCash), 마야(Maya) 같은 핀테크 기업서부터 글로벌기업 언스트앤영(Earnst & Young)의 필리핀 로컬 법인 에스지브이(SGV),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스.피에이치(coins.ph), 바이낸스 아카데미, 1인치네트워크 등 다양한 기업이 부스를 마련했다. 지캐시와 마야는 필리핀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결제 서비스로, 최근 암호화폐를 도입했다. 에스지브이는 EY 블록체인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릭 로스(Rick Ross) 블록체인 컨설팅 디렉터는 “주요 은행 등 금융권과 유통 분야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도널드 림 디토 씨엠이 홀딩스(Dito CME Holdings) 최고운영책임자(COO)는 FTX 파산으로 업계 전반에 불신이 가득한 시점에 이러한 행사를 연 이유를 묻자 “어두울 때일수록 리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위기에 닥쳤을 때일수록 전문가 그룹이 모여 산업을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PBW 조직위원회 구성원으로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Blockchain council for Philippine)를 이끌고 있다. 그는 “웹2.0과 웹3.0 기업 간 장벽을 허물고 서로 소통하며 산업이 커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마닐라를 아시아 블록체인 허브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이번에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를 꾸리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다. 블록체인 기술, HR, 마케팅 등 각 분야 전문가를 한데 모아 두고 필요할 때마다 누구든 조언을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필리핀 정부도 블록체인 협회에 힘을 보태며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 29일 이반 유이(Ivan Uy) 정보통신부 장관은 행사에 직접 참석해 협회 창립을 알렸다. 그는 “웹3 시대에 블록체인 기술은 핵심 역할을 한다”면서 “이 기술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고, 디지털 경제 성장 잠재력을 이끌어내고자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협회에 조언을 구하며 블록체인을 다방면에 적용할 방침이다.
블록체인 협회 일원인 오스카 탄 아빙(Oscar Tan Abing) 아노토이즈 콜렉티버스(Anotoys Collectiverse) 대표는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메타마스크를 다운로드한 국가”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플레이투언(P2E) 게임 대표주자인 엑시인피니티 열풍으로 필리핀 국민 다수가 암호화폐 지갑 메타마스크를 다운받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을 크립토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줬다(open the door)”고 표현했다. 최근 암호화폐 시장 침체기로 P2E 열기가 한풀 꺾였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메타마스크 지갑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인프라가 구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언제든 유망한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나왔을 때 확장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지난 29일 막을 올린 PBW는 다음 달 4일까지 뉴포트 월드 리조트 마닐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