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부상자들과 유족들은 2차 가해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KBS에 따르면 참사 당일 밤 이태원을 방문한 A씨는 인파를 피해 겨우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팔에 피멍이 들고 메스꺼움 증상이 있어 이틀 뒤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A씨를 진찰하던 의사는 다친 부위와 부상 경위를 듣고서는 다짜고짜 “이태원을 왜 갔냐”며 “그 사람들을 왜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지원금에 내 세금이 들어가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A씨는 웃어넘기려 했지만 의사는 계속해서 “희생자들을 왜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애도할 마음도 없다”며 “내가 20~30대 때는 공부만 했는데, 요즘엔 다들 놀러 다니기만 바빠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비난을 이어갔다.
의사의 말에 A씨는 진료를 거부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이태원 참사 부상자라서 내가 이렇게 아프다’라고 얘기하기가 눈치 보인다”며 “이태원 갔다는 얘기를 못 하겠다. 병원에서 ‘얘도 우리 세금 떼먹는 사람이네’ 생각할까 봐 서류를 함부로 못 내밀겠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2차 가해는 트라우마를 심화시킬 수 있다. 강지인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KBS에 “트라우마가 1차적으로 끝난 게 아니고 그 후에도 계속 트라우마를 자극하면서 재경험 같은 과각성 증상들이 더욱더 자극되거나 악화될 수 있는 계기들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트라우마로 인한 불편감이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주관적인 고통이 심하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발전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작은 말 한마디에 따뜻한 위로는 큰 힘이 되는 반면 비난이나 섣부른 충고, 지적은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만큼 서로를 이해, 공감하고 보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성명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과 현장에 있던 분들의 트라우마를 더욱 가중시키고 회복을 방해한다”며 “혐오와 낙인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해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2차 가해 게시물에 대해 정식 수사에 나선 상태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위반 혐의로 20대 피의자 3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도 같은 혐의로 30대 1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런 가운데 이태원 참사 당시 소방당국에 구조요청을 했던 119 신고자 두 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신고 시간이 각각 참사 당일인 29일 오후 10시 42분, 11시 1분경이었던 만큼 소방당국이 ‘골든타임’을 허비했다는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특수본은 30일 언론 백브리핑에서 "(참사 당일 첫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 15분 이후에 계속적으로 사망자를 줄이거나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오후 10시 15분 이후에 구조 활동이 계속 진행됐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방당국의 구조활동이 적절했는지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