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에 반발해 장기간 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국가에 10억원대 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고 본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경찰장비를 위법하게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행위로 인해 헬기 등이 손상됐다면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국가가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민주노총, 노조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 중 헬기 및 기중기 손상에 대한 노조원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경찰항공 운영규칙과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의도적으로 헬기를 낮은 고도에서 제자리 비행해 옥외에서 농성 중인 사람을 상대로 직접 그 하강풍에 노출시키는 것은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주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경찰관이 직무 수행 중 특정한 경찰 장비를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관계법령에서 정한 통상의 용법과 달리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직무수행은 위법하다"며 "상대방(노조원들)이 위해를 면하기 위해 대항하는 과정에서 경찰 장비를 손상시켰다면 이는 위법한 공무집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쌍용차 노조원들은 2009년 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사측의 정리해고에 반발해 평택공장을 점거해 파업을 벌였다. 당시 사측은 전체 근로자의 37%에 해당하는 2600여명을 희망퇴직, 분사 등의 방법으로 구조조정했다. 경찰은 헬기와 기중기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노조원들과 충돌해 경찰관이 다치고 헬기 등이 파손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노조의 책임을 인정해 국가에 14억6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노조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배상액을 11억2000여만원으로 산정했다. 하급심에서 인정한 손해배상액의 대부분이 헬기, 기중기 등 장비 파손에 따른 손해였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의 쟁점은 헬기 등 장비를 동원한 경찰의 진압행위가 위법인지와 이에 대항해 노조원들의 헬기 손상 등이 불법행위에 해당하지는 여부로 좁혀졌다.
다만, 대법원은 경찰관 치료비와 차량 수리비 등 나머지 손해배상에는 노조원들의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손해배상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헬기와 기중기 손상에 근로자들의 책임을 일부 면제한 만큼 최종 배상액은 원심보다 훨씬 줄어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