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 인민대표대회의 최대 화두는 이른바 ‘중국식 민주주의’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는 전 인류의 공동 가치이며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이 확고하게 고수해 온 중요한 개념”이라면서 “중국식 민주주의 체제는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또한 “민주주의는 장식품이 아니다”라며 “민주주의는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은 일찍이 ‘전 과정 인민 민주’를 주창해왔다. 중국이야말로 정치·사회 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인민의 의지를 실현하고 인민의 목소리를 듣는 진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 주석이 공식 석상에서 민주주의를 거론하고 나선 것은 중국이 시진핑 독재 체제로 가고 있다는 국내외 거센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였다.
중국 정부가 중국식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제시해온 것이 코로나19 정책이다. 중국은 코로나19에 맞서 외부의 도움을 거부한 채 자체 개발한 백신(시노백)과 방역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앞세워 중국산에 비해 효과가 더 좋은 서방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수입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 등에 비해 확진자 및 사망자 수가 훨씬 적다는 점을 홍보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시 주석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영웅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중국 정치 시스템의 우월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고 치켜세웠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코로나19같은 전 지구적 도전을 통해 중국식 민주주의의 왕성한 생명력을 입증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시 주석의 호언장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하루 확진자 수가 3만 명대로 폭증하면서 상하이·베이징 등으로 봉쇄 지역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당국의 전면 봉쇄 조치는 사회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낳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취약 계층인 고령층의 백신 접종률이 크게 낮은데다 의료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체제의 우월성과 결부시키는 바람에 이를 바꿀 경우 막대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코로나19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2030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시위대는 ‘코로나 검사 말고 밥을 달라’ ‘봉쇄 말고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거리에서는 ‘시진핑 퇴진’ ‘언론 자유’ ‘인권 보장’ ‘투표’ 같은 구호가 울려퍼지고 있다. 시 주석은 집권 3기를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진퇴양난에 몰리고 있다. 시 주석을 앞세운 중국 공산당의 ‘무오류 신화’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번 시위 사태의 근저에는 경기 침체가 깔려 있다. 상하이 봉쇄로 인해 2분기 경제성장률은 0.4%까지 떨어졌고 10월에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수출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중국 내 공급망이 흔들리자 많은 외국계 기업이 인도·동남아 등지로 빠져나가고 청년 실업률은 19.8%(7월 기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념이 득세하고 자유와 인권을 억누르면 경제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2013년 5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표지에 청나라 황제의 용포를 입은 시 주석이 등장했다. 눈길을 끈 것은 ‘Let’s party like it’s 1793(1793년처럼 파티를 하자)’이라는 문구였다. 1793년은 청나라 건륭제가 영국의 조지 매카트니 사절단으로부터 개방을 요청받았던 해다. 당시 건륭제는 “중국에는 모든 것이 다 있어 무역에 나설 필요가 없다”며 영국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자급자족식 왕조의 자신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제3기의 시 주석은 건륭제 말기부터 자만과 부패에 빠져 쇠락의 길로 들어선 청나라의 과거를 기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중국식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는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