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완성은 작가의 몫일까, 감상자의 몫일까. 롤랑 바르트는 작품은 관객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말한다. 즉 작품의 완성은 능동적인 감상자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감상자를 예술가와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리며 작품의 해석을 보다 풍부하게 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우리가 작품 앞에서 감동보다는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미술 작품 앞에서 당당하게 감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시장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처럼 간단히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술관이 늘어나고 미술관을 찾는 관객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미술은 어렵기만 하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미술교육이 어떻게 행해져왔는지 살펴봐야 할 순간이다. 정규 교육과정만 하더라도 미술은 필수과목으로 대부분 미술교육을 받은 경험을 가진다. 하지만 미술과의 거리감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미술교육은 크게 ‘창작’, 그리고 ‘향유’의 영역으로 구분돼왔고 우리나라의 미술교육은 그중 창작에만 편중돼왔다. 미술 시간에 색칠하고 오려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향유의 영역, 즉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감상과 비평’의 시간을 가져본 적은 드물 것이다. 이렇듯 예술 ‘향유’에 대한 교육이 소홀하다는 지적은 이미 제기됐으며 따라서 근래 교육과정의 경우 미술교육의 균형적 실천을 강조한 지 꽤 됐다. 그러나 우리의 실태를 볼 때 적극적인 감상 지도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듯 보인다.
사실 감상에 대한 갈증과 고민은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더 일찍이 뉴욕 모던아트뮤지엄 MOMA 에듀케이터 필립 예나윈은 작품 감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술관 이사진이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프로그램의 전후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하버드대의 연구자와 협력해 면밀히 분석·평가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관객들은 미술관에서 전달받은 정보나 지식에 대해서 작품의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예나윈은 감상자의 실생활 또는 경험과 연결되지 않은 작품의 정보는 기억되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작품을 읽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감상 방법이 바로 ‘시각적 사고 전략(Visual Thinking Strategies :VTS)’이다. 사실 예나윈의 전략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기보다 ‘시각적 인지능력’을 활용해 ‘대화’가 중심이 되는 쉽고 효과적인 감상법을 제시한 것에 가깝다. 이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서구 미술관에서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2014년부터는 이탈리아 미술교육 방법으로 채택돼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활용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서의 경우 독자들이 시각적 사고를 기를 수 있도록 매주 1회씩 지면을 할애해 보도사진을 이용한 VTS 토론을 진행한다. 그렇다면 예나윈의 시각적 사고 전략은 무엇일까. 전략은 다음의 세 가지 질문으로 구성된다.
첫째, 이 그림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둘째,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셋째, 무엇을 더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시각적 사고 전략을 이용해 시각적 문해력을 키우고 작품 앞에서 당당한 감상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나윈의 말처럼 학교 밖 미술관에서의 교육은 지식의 일방적 전달이 아닌 대화 형식의 쌍방향 소통이기를 바란다. 적어도 예술에서만큼은 정해진 답이 아닌 관객이 작품과 함께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림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능동적인 주체로서 꿈꿔온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예술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