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미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승리한 미국이 16강 진출을 확정하면서 양 팀의 희비가 엇갈렸다. ‘정치적 앙숙’ 관계지만 미국 선수들은 낙담하는 이란 선수들을 위로했다.
30일(이하 한국 시간) 카타르 도하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은 조 편성이 결정됐을 때부터 관심을 끌었다.
양국은 핵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인권 문제 등 정치적으로 오랜 갈등을 겪어왔다. 정치적으로 오랜 ‘앙숙’ 관계인 두 팀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이란 2-1 승) 이후 24년 만에 월드컵 경기에서 다시 만났다.
특히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일어난 이란 반정부 시위로 이날 경기에는 ‘정치적 배경’까지 더해졌다.
이란에선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이는 등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 숨진 사실이 알려지며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다. 이란 선수들은 잉글랜드와 1차전 경기에서 국가 제창을 거부하며 반정부 시위대에 연대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이란 두 팀의 경기 직전 미국 대표팀이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성 인권에 대한 지지의 뜻으로 이란 국기 가운데 위치한 이슬람 공화국 문양을 삭제해 게시하면서 양국 간 긴장감이 증폭됐다.
이란축구협회는 AP통신 관계자에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며 “우리는 이를 FIFA 윤리위원회를 통해 따져보려 한다. 미국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 당일 관중석과 그라운드에서 양국 간 살벌한 긴장감은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 팬들끼리 충돌하면서 수십 명의 경찰관이 출동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여성, 삶, 자유’가 적힌 옷을 입은 이란 팬이 보안 요원에게 제압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치러진 경기에서 미국은 1-0으로 승리를 거뒀고 이란은 1승 2패(승점 3)로 B조 3위를 기록,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가 끝난 후 이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본 일부 미국 선수들은 이란 선수들을 위로했다.
미국 대표팀 공격수 조슈아 서전트(22·노리치 시티)는 상심한 이란의 메흐디 타레미(30·FC 포르투)의 손을 잡고 격려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는 사이드 에자톨라히(26·바일레)에게도 다가가 그를 다독였다. 또 미국의 팀 림(35·풀럼)은 그라운드에 누워있는 라민 레자에이안(32·세파한)을 위로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은 1승 2무(승점 3점)로 B조 2위에 올라 같은 조 1위 잉글랜드와 함께 16강에 진출했다. 미국의 16강 진출은 2014 브라질월드컵 이후 8년 만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8강 진출에 도전하는 미국은 오는 4일 A조 1위 네덜란드와 16강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