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고척돔구장에서 열린 2022년 멜론뮤직어워드(MMA). 이례적이게도 신인 남자 가수 ‘질주(JZ)’가 홀로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마치 영화 속 슈퍼히어로에게나 어울릴 법한 현란한 가면을 쓰고 나타난 이 당찬 신인은 수십 초간 화려한 춤을 선보인 뒤 이내 가면을 벗었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팬들을 위해 ‘무대 미소’를 짓는 모습이 너무 프로다워 정말 신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질주가 ‘생신인’인데도 떨지 않았던 비결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질주는 바로 디지털 세계에만 존재하는 버추얼 휴먼. 비브스튜디오스는 올해 4월 버추얼 휴먼 ‘질주’를 공개했다. 온마인드 ‘수아’, 스마일게이트 ‘한유아’ 등 기존 버추얼 휴먼 대부분이 여성인 가운데 비브스튜디오스는 남성 버추얼 휴먼을 내놓으며 차별화를 꾀했다. 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남성 버추얼 휴먼의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김세규 비브스튜디오스 대표의 판단이다.
질주는 팬들과의 소통 면에서도 남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최근 ‘원정맨’ 소속사 순이엔티와 계약을 맺고 11월부터 틱톡을 시작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영상을 올린다. 타 버추얼 휴먼의 경우 매일 콘텐츠를 올리는 경우는 드물고 그마저도 대부분 영상이 아닌 단순 사진이다.
질주가 매일 영상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제작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대부분의 버추얼 휴먼은 대역 모델에다가 컴퓨터그래픽(CG)을 한 땀 한 땀 적용하는 방식으로 제작한 탓에 3분짜리 영상 하나 만드는 데 한 달가량 걸린다”며 “반면 비브스튜디오스는 자체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을 활용해 이 같은 프로세스를 전면 자동화했기 때문에 같은 분량의 영상을 만드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비브스튜디오스는 올해 초 AI랩을 설립하면서 생성형 AI 기술력을 확보했다. 연구소 설립과 함께 영입한 이광희 CTO가 이 분야 연구원들을 다수 끌어왔다. 김 대표는 “대부분 버추얼 휴먼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을 정도로 꾸준히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매일 영상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질주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는 이유”라고 자신했다.
최근 버추얼 휴먼을 비롯한 메타버스 열기가 다소 사그라들고 있지만 김 대표는 “걱정 없다”고 단언했다. 내년 중 애플이 혼합현실(MR) 기기를 내면 시장 판도가 다시 한 번 바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화면 밖으로 나온 버추얼 휴먼을 볼 수 있어야 진정으로 좋아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비브스튜디오스는 버추얼 휴먼뿐 아니라 확장현실(XR) 다큐멘터리·콘서트 등 풍성한 콘텐츠를 준비해놓은 만큼 내년 애플 기기가 출시되면 많은 혜택을 볼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