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깜깜이 대입 전형 3형제

◆한기석 논설위원

자기소개서 ‘자소설’ 오명에도 꼭 필요

교사추천 없애자 과고가 의대 싹쓸이

고교 블라인드제 일반고 차별 역효과

좋은 학생 뽑고 싶으면 원상복구해야





축구 세계 최강 브라질과의 한판 승부가 끝났다. 브라질을 이길 확률이 16강에 오를 확률보다 훨씬 높았는데도 이변은 없었다.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아직 가슴을 몇 번 더 졸이며 결과를 기다려야 할 사람들이 있다. 대학 입시 수험생과 가족들이다. 수학능력시험 성적은 9일 나오고 수시 합격자 발표는 15일 마무리된다. 내년 2월 17일까지 정시 미등록 충원 등록이 이뤄지면 2023학년도 대입이 끝난다.



2024학년도 이후의 대입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현행 입시의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 번째는 2024학년도부터 수시에서 자기소개서가 폐지된다는 점이다. 자소서는 말 그대로 학생이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다. 학생은 자소서를 통해 지원한 대학에 자신을 어필한다. 대학은 자소서를 통해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합격 여부를 판단한다. 자소서가 없으면 남는 것은 학교생활기록부뿐이다. 학생부는 주로 교과 성적을 보여주는 데다 기재 항목마다 적는 글자 수가 한정돼 있어 학생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1학년 때는 성적이 좋았다가 2학년 때 건강 악화로 떨어진 경우 학생부만으로는 원인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 당연히 필요해 보이는 자소서를 폐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소서는 언젠가부터 ‘자소설’로 불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없는 일을 꾸며내고 있는 일을 과대 포장하면서 자소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폐지하기로 한 결정은 단순하고 무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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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와 함께 학생을 평가하던 한 축인 교사 추천서는 이미 없어졌다.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는 교사의 평가권 강화다. 학생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교사가 학생의 학습 능력이나 인성 등에 대해 평가하는 교사 추천서는 학생을 뽑는 대학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전형 자료다. 하지만 교사 추천서를 어떤 학생에게는 좋게 써주고 어떤 학생에게는 나쁘게 써준다는 말이 나오고 교사 추천서를 표절하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이럴 바에야 폐지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교사 추천서가 사라진 후 전국의 의과대학은 과학고 학생들이 싹쓸이한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전에는 과학고 학생이 수시로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학교가 의대 수시 전형에 필요한 교사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능해졌다. 이미 정시에서는 교육비 반납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정시와 수시 양쪽에서 의대 진학의 길이 열렸으니 과학고가 아니라 의대준비고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과학고는 국가를 위해 봉사할 과학 인재를 키우는 학교다. 교육비의 대부분이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의사라는 개인 영달을 추구하는 데 나랏돈을 들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의대 정원이 과학고 학생으로 채워질수록 일반고 학생이 의대를 가는 문은 더 좁아진다. 학종 불공정 논란을 없애려다 일반고 차별이라는 역효과만 낸 셈이다.

수시 전형 서류에서 고교 이름을 지우는 고교 정보 블라인드 제도도 문제가 크다. 이 제도를 도입한 의도는 출신 고교가 특수목적고일 경우 더 후하게 평가하는 후광효과를 차단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2022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자를 보면 일반고는 상위 30위 안에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해 블라인드 제도 도입 전과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일반고 출신 비율은 제도 도입 이후 더 줄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급격한 입시 제도 개편은 없을 것 같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 기자 간담회에서 입시 제도 개편에 대해 “가능하면 이번 정부에서는 소극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입시 제도를 바꿀 때마다 좋은 평가보다는 나쁜 평가가 많았고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스트레스는 커졌다. 입시 제도 개편은 백년대계 차원에서 긴 안목으로 도모할 일이다. 다만 자소서와 교사 추천서 폐지, 고교 블라인드 제도 도입은 취소하고 원상 복구하면 좋겠다. 깜깜이 전형으로는 좋은 학생을 뽑을 수 없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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