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만학의 꿈 꺾이지 않게…정부지원 절실"

■'46년간 6000명 졸업' 상록야학 황기연 교무부장

야학 유지, 우리 힘만으론 벅차

학생 모집·장소 제공 등 도움 필요

상록야학 가장 큰 장점은 '끈끈함'

30년 전 졸업생도 한 눈에 알아봐

황기연(오른쪽 두 번째) 상록야학 교무부장이 야학 봉사에 나선 교사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황기연(오른쪽 두 번째) 상록야학 교무부장이 야학 봉사에 나선 교사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저녁 7시 서울 이문동 경희대의료원 앞 건물. 밖은 어둠이 내려 깜깜한데 이 건물의 지하 공간은 불빛으로 대낮처럼 환하다. 시험을 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어르신 학생들과 교사들. 각 교실마다 긴장감이 역력하다. “나 시험 어제 못 봤는데 어떻게 해.” 한 어르신의 투정에 “공부 더 하셔야죠” 하는 선생님의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야간학교 중 한 곳인 ‘상록야학’의 모습이다. 얼마 전 작고한 고(故) 박학선 교장이 1976년 세운 상록야학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야학 중 한 곳이다. 중학교 졸업식은 46회, 고등학교 졸업은 36회나 치렀다. 거쳐간 졸업생 수만 6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학생 수도 올해 처음 생긴 초등반 11명을 포함해 총 96명으로 서울의 야학 중 가장 많다.



야학은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하던 사람을 대상으로 밤에 수업을 하는 곳이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야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여공(女工)’과 ‘의식화’였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단어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의무 교육이 이뤄진 점도 있지만 시대 자체가 변한 것이 더 컸다. 7일 서울 이문동 사무실에서 만난 황기연 상록야학 교무부장은 “사회가 바뀌고 경제적 여건도 좋아지면서 야학 생태계도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는 젊었을 때 일하느라 또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장노년층이 많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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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야학을 찾는 이유는 못 다한 공부를 하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상록야학은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항상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과거 MT라 불렸던 ‘모꼬지’를 갖는다. 여기서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자신이 힘들게 자랐고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는 것들이다. 이러한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서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자신들이 야학에 나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공부지만 그 내면에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자신도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죠.” 황 교무부장의 해석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들이 야학에 들어올 때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주를 돌보기 위해 또는 일을 해야 하거나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황 교무부장이 가장 가슴 아프게 여기는 순간이다.

상록야학의 가장 큰 장점은 ‘끈끈함’이다. 38명의 교사 중 10년 차 이상이 7명, 5년 차 이상은 10명이 넘는다. 황 교무부장 역시 40년을 이곳에서 지냈다. 연차가 오래된 교사들이 많다 보니 30년 전에 졸업한 학생도 한눈에 알아보고는 한다. 학생과 선생 간 관계가 그만큼 돈독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총학생회도 존재하고 수학여행도 다닌다. 학생 간 유대감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황 교무부장은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과 교사들이 이른바 ‘5교시’라 부르는 술자리를 갖고는 한다”며 “유대감이 강하다 보니 졸업생이 여유가 생기면 후원금을 내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상록야학의 모토는 ‘판을 깨지 말자’다. 야학을 유지하기 힘들어도 어떻게라도 화합하고 수습해서 유지하자는 것이다. 19세 이상 국민 중 중학교 이상의 학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약 450만 명, 서울에만 50만 명 정도 된다. 그들과 연결만 된다면 야학은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야학에서 자체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주기 바라는 이유다. 황 교무부장은 “교육은 우리가 할 수 있지만 학생을 모으는 것은 우리 힘만으로 하기 벅찬 게 사실”이라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학생 모집이나 교육 장소 제공 등을 지원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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