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라 선임한 안전보건관리책임자(CSO)에게 조직·인력·예산 등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철저한 관리·감독 체제 아래 CSO에게 실질 권한이 주어져야만 중대재해 예방과 시민·종사자의 생명·신체 보호 등 법률 제정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책임 소재 등 분쟁 과정에서 CSO에게 실제 권한을 부여했느냐가 법적 판단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안범진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는 8일 서울 삼성동 율촌 사무소에서 열린 ‘중대재해법 시행 1년, 시사점과 대응전략’ 웨비나에서 “중대재해법 사건에서 인과관계와 원청 책임 여부 등과 함께 자주 다투게 되는 부분이 ‘CSO가 경영책임자인가’라는 부분”이라며 선박 수리업체 A사 사례를 소개했다. A사는 CSO를 선임했으나 검찰은 '대표이사가 실질적 결정권자’라며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A사는 수사 과정에서 CSO를 책임자로 주장했으나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변호사는 “CSO를 선임했더라도 책임 소재를 두고 다투는 사례가 자주 있다”며 “CSO를 임명한 지 얼마되지 않았거나, 관리·감독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경우 대표이사에게 책임이 없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올해 1월 27일 이후 11월까지 각 지방 노동청이 송치한 23건의 사건 가운데 검찰은 6건을 재판에 넘겼다. 특히 이들 기소 사건에서 CSO 등 업무 수행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 공통적인 위반 사항으로 꼽혔다. CSO에 대한 평가 등 관리·감독 시스템 미비가 기소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 셈이었다.
율촌 중대재해센터 공동센터장인 박영만 변호사도 CSO에 대한 권한 부여와 함께 전체적 평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CSO 평가 시스템 미비가 기소 사건에 100% 위반 요인이 됐다는 것은 기업들이 중대재해법상 인적·안전관리 체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의미한다”며 “안전 의무 이행은 CSO와 현장 책임자가 직접 지휘·감독해야 형식적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각종 권한 부여와 함께 적격·부적격, 등급별 등 적절한 평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CSO 등에게 예산과 인사, 조직, 징계 등 실질적인 권한을 주는 동시에 평가 등에 따른 책임도 함께 부여해야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수현 변호사도 “CSO에게 예산 등 전권을 준다는 것은 국내 기업 환경에서 쉽지 않다”며 “인사·예산 등에 대한 전권과 함께 안전의무를 다하지 못한 하도급 업체는 계약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현장 위험성에 따라 공사를 일정 기간 중지하게 하는 권한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아울러 “대표가 상주하면서 관리책임자 역할까지 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본인이 중대재해법 의무 이행을 하는지 자체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며 “스스로 평가가 힘들다면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아 기록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