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하나 없었다. 대전차포로 구멍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242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내려오는 적을 막기 위해 우리는 포탄을 둘러메고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약 72년 전 우리는 그렇게 침략당했다. 그러한 나라가 이제 세계 3위 수준의 첨단 전차 보유국이 됐고 심지어 전차전의 격전지이자 본고장인 유럽으로 최신 전차 K2 1000대를 수출한다.
포병은 세계 최강 수준의 전력으로 발전했다. K9 자주포는 수출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전쟁의 비대칭 전력이라는 ‘하이마스’와 성능을 견주는 K239 천무도 실전 배치돼 있다. 지상뿐 아니라 하늘도 장악한다. FA 50 경공격기는 틈새시장을 노려 폴란드 수출에 성공했다. 한국형 스텔스 전투기 KF 21 보라매는 시험 비행에 성공해 앞으로 4년 뒤면 실전 배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진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방산 강국이다. 게다가 현역 병력은 52만 명으로 규모도 상당하다. 만약 대한민국이 북중러 등 군사 국가들에 둘러싸인 동북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주축인 영국과 프랑스의 병력이 각각 15만 명, 20만 명에 불과해 아마 우리는 유럽 최강의 군대를 가진 국가가 됐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엄청난 병력을 보유해 규모의 경제를 이뤘다는 점이야말로 우리 방산의 강점이다. 나토 국가들이 이룰 수 없는 규모의 경제와 그에 따른 생산 역량을 우리는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2차 인구절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간 28만여 명이던 병역 자원은 2038년께 13만여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2040년대에 이르면 징병제를 유지하더라도 50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은커녕 35만 명도 버거울 것이다. 당연히 방산의 규모도 달라지게 된다. 더 이상 규모의 경제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에는 더 이상 전차나 자주포 같은 인력 집약적인 전통적 무기 체계가 주력이 되기는 어렵게 된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병력 감축의 공백을 메울 무기 체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공지능(AI)이나 무인 체계 등이 무기 체계의 주력이 될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무기 체계들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무인 무기 체계로 개조돼 진화할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력들을 한데 묶어 하나처럼 싸울 수 있는 구조다. 아직 미국조차 이러한 미래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미래는 가장 절박한 이들이 만들어낸다. 증가하는 북한과 주변국의 위협, 심각히 줄어드는 인구 속에서 우리는 미래 국방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내놓은 절박한 대답이 옳은 것이라면 수많은 국가가 우리의 답을 차용하고 따라할 것이다. 마치 1991년 걸프전의 승리 이후 수많은 국가가 미국의 군사 혁신을 배우려 했던 것처럼 한국의 국방 혁신이 세계를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국방부가 추진하는 국방혁신 4.0 정책은 우리 미래 방산의 성공과 연관된다. 대통령 직속의 국방혁신위원회가 내년에는 발족한다고 한다. 정부는 민·관·군 구분 없이 최고의 전문가들을 위원회로 모아 미래 전쟁을 준비해야만 한다. 많은 나라가 유무인 복합 전투를 준비하면서 줄어든 인간 병력에 AI 기반의 자율 무기 체계를 결합해 인명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싸움을 구상하고 있다.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결과를 낼 수 있는 국방혁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다.
방산 수출의 일선에서 우리의 능력을 과시하고 교역국을 늘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리되고 러시아의 군사력이 줄어들면 결국 방산 소요는 다시 줄어들 것이다. 그런 시기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이 국방혁신을 통해 등장한 무기 체계일 것이다. 국방혁신으로 다음 세대의 미래를 지켜낼 뿐 아니라 차기 방산 시장을 준비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