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일감 밀려오는데 '주52시간'에 발목…K조선, 中에 '외주 SOS'

[인력 씨마른 K조선]

◆中조선 키워주는 '노동 족쇄'

야근·특근으로 수익보전 못하자

경력 20년 생산직도 月 200만원

10여년만에 조선업 인력 반토막

'인프라 부족' 外人 근로자도 이탈

전문가 "경직된 노동 개선 시급"





현대중공업(329180)삼성중공업(010140) 등 국내 대표 조선사들이 수주한 물량의 일부를 중국 업체에 맡기기로 한 것은 현재 국내 조선업이 직면한 인력난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력사와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 국내 조선사들끼리 쟁탈전을 벌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글로벌 경쟁사에 선박 건조를 맡겨야 하는 상황까지 왔기 때문이다. 업계는 인력 유출의 원인을 저임금 구조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주52시간 근로제 확대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정부의 경직된 노동정책 탓에 빠져나간 인력을 제대로 충원하지 못한 제도적인 문제를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의 인력난 배경에는 주52시간 근로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조선소에는 전 세계에서 일감이 쏟아지고 있지만 각종 규제로 조선소 근로자는 야근·특근이 어려워 임금 하락과 인력 유출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조선소는 수주가 불규칙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일감이 있을 때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소도 일반 제조업과 같은 주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다 보니 경력 20년이 넘은 일부 중형 조선소 생산직도 임금이 200만 원 수준에 그친다. 장기간 불황으로 형성된 조선업의 저임금 구조는 단시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야근·특근 등 근로시간 확대를 통해 수익을 보전해야 하는데 주52시간 근로제의 족쇄에 묶여 수익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결과가 바로 조선소의 인력 유출이다.



실제 2020년부터 조선 경기가 되살아나며 일감이 급증했지만 떠난 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국내 조선 업계는 지난해 1744만 표준화물선환산톤수(CGT)를 수주해 2020년 823만 CGT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도 11월까지 3742만 CGT를 수주하면서 지난해보다 일감을 2000만 CGT 더 받았다. 조선 업계는 지난해부터 늘어난 수주로 인력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오히려 인력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009540)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4년 20만 3441명이던 조선업 재직자 수는 올 9월 말 기준 9만 3038명으로 8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줄어든 인력의 대다수는 생산 인력(9만 8003명)이 차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중국의 경쟁사 COSCO에 원유 생산 설비 선체 물량을 주고 삼성중공업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블록을 중국 하청 업체에 맡긴 것은 기술력을 가진 한국이 수주를 받고 실제 생산은 중국이 하는 이중구조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와 같은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사업 정지와 같은 강화된 처벌 문제로 충분히 일할 수 있는 65세 이상 근로자 채용도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업계는 외국인 노동자 확충 문제도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부는 외국인 인력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국내 인력을 뽑는 것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는 이에 올해 조선업 전문 인력(E-7) 용접·도장공에 대한 쿼터를 폐지했지만 9월부터 이달까지 한국으로 오기로 한 1150명 규모 베트남 용접공들의 서류 조작 문제로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현대삼호중공업 사내 협력사 유일은 수년 전만 해도 내외국인을 포함해 800명이 일을 했는데 최근 외국인 근로자가 빠르게 나가면서 현재는 300여 명 수준으로 인력이 줄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뽑아 놓고 오랫동안 교육시키면 얼마 있다가 건설 현장 등으로 몰래 빠져나간다”며 “이에 대한 단속도 잘 없는 상황이라 조선소에는 늘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만 남는다”고 설명했다.

울산·거제·영암 등 주요 조선소 근처의 정주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선소 배후 도시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지만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기회만 있으면 수도권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인숙 유일 대표는 “영암의 경우 퇴근하면 할 게 없다 보니 외국인들 스스로 지역을 떠나고 있다”며 “내외국인 모두 여가·문화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생산 인력 유출도 다소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호현 기자·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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